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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부탁해 9년 전 조회 3,23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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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에릭 클랩튼’으로 불리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인정받았지만 국내에서 김목경이란 이름은 일부 마니아층에만 익숙하다. 김목경은 그런 불모의 땅에서 한결같이 블루스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매달려왔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의 절망을 안으로 삼켜 승화한 음악인 블루스. 그 맥박에 우리의 소박한 정서를 융합하는데 30여년 가까이 몸을 실어온 김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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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말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2002. 12.13 경향신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블루스를 ‘악마의 음악’이라고 부른다. 한 번 들으면 헤어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김목경이 그런 블루스에 빠진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300원짜리 ‘빽판’을 사러 방과 후 청계천을 어슬렁거릴 때 기타리스트들 사진이 총총히 들어찬 LP 한 장이 눈에 띄었던 것. 오직 ‘그림이 끝내줘서’ 산 판은 전축 바늘 밑에 놓이자 ‘마법의 호리병’ 처럼 엄청난 블루스 대가(大家)들을 불러왔다. 제프 벡, BB 킹, 에릭 클랩튼 등등. 음색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카락 끝까지 쭈뼛해졌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통기타를 혼자 익히던 소년은 그날로 가요 책을 접었다. 대신 LP속 그들로부터 기타 ‘사사’ 하기를 끈덕지게 자청했다.


나이 먹어 대학에 들어갔고 군복무도 마쳤지만 ‘빽판’ 한 장 덕에 생겨난 블루스를 향한 갈증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1984년, “에릭 클랩튼이 있는 영국으로 가겠다”며 부모님께 고집을 부렸다. 3개월 약속이었지만 7년이 걸렸다. 그런데 왜 미국이 아닌 영국행이었을까.

“영국 출신 ‘롤링스톤스’는 록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재즈클럽에서 블루스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믹 재거는 ‘나는 블루스 순수주의자’라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물론 블루스의 원산지는 미국이지만 실제로 체계화하고 널리 알린 것은 영국이었습니다. 비틀스, 에릭 클랩튼, 폴 매카트니 등이 모두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뮤지션이죠”

그는 영국에서 블루스의 감각을 몸으로 익히며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키운다.

#‘블루스의 혼’을 만나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꿈이 있어 행복한 고생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공항에서 관광객 픽업, 점심에는 식당에서 접시 닦고, 다시 동네 집집 돌아다니며 페인트 칠을 했다. 끝나면 저녁 8시. 클럽에 가서 일본인 피아노 연주자와 맞춰 새벽 2시까지 기타를 쳤다. 실력이 좀 늘었다 싶었을 때였다.

“기타를 새로 하나 장만하려고 악기상점에 들어갔죠. 아르바이트 하는 10대 소년이 기타 고르는 걸 도와주겠다고 튜닝을 한다며 잠깐 연주하는데, 실력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넌 에릭 클랩튼보다 더 잘 치는 천재’라며 혀를 내둘렀더니 겸손하게 대답했어요. ‘에릭 클랩튼이라는 전범(典範)이 계시니 제가 이만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라고요”

김목경은 그 당시를 “음악하는 사람의 자세를 깨달았던 순간”이라고 되새겼다. 나를 지우니 대가들의 음악 속에 담긴 혼이 보였다. ‘원 노트 맨’(One Note Man)으로 불리는 BB 킹의 단순한 음이 징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와닿았다.

그렇게 갈고 닦은 기타 실력으로 영국 생활 5년차 때부터 레이 하이우드라는 피아니스트가 이끄는 블루스 밴드에 합류했다. 에릭 클랩튼을 연상시키는 주법이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수준이었던지라, 오디션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이후 2년간 리더 하이우드는 블루스 감각을 김목경에게 전수한 ‘사부님’이었다.

1991년 한국으로 돌아와 영국에서 녹음한 마스터테이프로 음반을 냈다. 하지만 ‘립싱크를 강요하는’ 풍토에서는 자존심이 상했다. 내 노래 틀어놓고 입만 뻥긋거리라니. 음반사 사장과 ‘대판’ 싸우고 방송출연이 싫어 도망갔다. 오버그라운드 진출, 그러니까 ‘뜨기’를 포기했던 셈이다. 그 뒤부터 그는 10년이 넘도록 신촌 등지에서 언더 뮤지션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의 추종자들은 작곡·작사·연주·보컬까지 해내는 진정한 실력파를 찾아 밤마다 클럽으로 날아들었다. 나중에 김광석이 불러 유명해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도 원래 그의 작품이다. 솔풍의 ‘여의도 우먼’, 한국적인 멜로디의 ‘부르지마’, 경쾌한 ‘플레이 더 블루스’ 등의 곡이 이어질 때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손가락에 ‘보틀 넥’이라는 반지를 끼고 연주하는 슬라이드 주법은 국내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이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그는 흑인의 한서린 감성을 완벽하게 연주해내는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우뚝 섰다.

#블루스는 슬프지 않다

블루스로 한국의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블루스는 부당하게 ‘컬트 장르’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언젠가 공연에서는 무대에 섰더니 세션보다 적은 다섯 명의 관객만 덩그러니 있었다. 모두 무대 위로 불러 같이 깡소주를 씁쓸하게 깠다. 아예 청중이 없어 공연을 취소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록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블루스의 내밀함을 알아야 한다는 게 김목경의 지론이다. 록의 혈관에 흐르던 것은 진득한 ‘블루스’이고, 그 슬픔에서 록의 카타르시스가 비롯됐기 때문이다. 중년의 눈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그가 소탈하게 말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꼭 슬프지만은 않은 게 블루스를 닮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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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현2012.04.16. PM 10:30 답글수정삭제신고
아는사람은 다아는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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