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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섞여서 좋아야 해, 하나씩 좋아봐야 꽝이야" - 뉴스/칼럼 - 모터핑거 [100℃] 조동진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  - 일렉기타 통기타 베이스 강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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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조회 1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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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조동진 떠나기 전 마지막 인터뷰

 

"장희가 비 오는 날 준 레너드 코언

일주일동안 완전히 빠져서 들었어

'행복한 사람' 김세환 주려다 안돼

첫 앨범에 실어 그걸로 먹고 살았지

 

내가 올드할 거라고? 얼리 어답터야

디지털이 만들어주는 새로운 소리

리마스터링 전집에도 덕 많이 봤어

밸런스·명료함 같은 게 너무 좋은 거야"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의 조동진. 푸른곰팡이 제공

병세가 악화되기 직전의 조동진. 푸른곰팡이 제공

 

 

"오늘 내가 말을 잘하네. 질문이 좋으면 내가 말을 잘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조동진은 이런 말을 했다. 흔한 덕담 가운데 하나였을 테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 조동진(1947~2017)은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음악가였다. 최근에 한 인터뷰 역시 누군가를 거쳐 전자우편을 통해 나왔다.

 

하지만 문병을 하러 그의 집을 들렀을 때 그는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했다. 이전에는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라며 언급하길 꺼리던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도 했다. 고무된 우리는 인터뷰를 몇 번 더 해서 조동진의 평전을 쓰려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두 번의 만남 뒤 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지난 8월 8일과 20일은 그가 마지막 인터뷰를 한 날이 되었다.

그 가운데 몇 개의 작은 조각들을 추려 본다.

 

 

"나는 그때(1960년대 말)까지 통기타는 생각도 안 했어. 통기타는 그냥 집에서 뚱땅거리는 거였지. 어느 날 (윤)형주를 만났는데 뭐하냐고 물어보니까 (송)창식이랑 트윈폴리오를 한대. 그게 뭐냐고 하니까 통기타로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통기타는 쳐 주지를 않았어.(웃음)"

 

조동진은 늘 의외의 아티스트였다. 그는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조동진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통기타를 멘 모습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는 스스로 '로큰롤' 밴드라 말하는 쉐그린 등에서 전기 기타를 연주했다. 그룹사운드 생활도 지겨워지고 미군 클럽 공연이 피곤해질 즈음 밥 딜런과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에 매료됐다. '이것도 재미있네' 하는 생각은 '이런 것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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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세가 악화되기 직전의 조동진. 세상 떠나기 일주일 전에 진행된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것과 음악에 열정을 보여줬다.

 

"(이)장희는 기억을 못할 수도 있을 거야. 장희랑 나랑은 아직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어느 날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보니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장희가 서 있는 거야. '이걸 듣는데 네 생각이 났다'면서 음반 한 장을 주고 가더라고. 그게 레너드 코언 1집이었어. 장희가 미국에 있는 사람한테 원판을 받았는데 굉장히 좋다며 너도 한번 들어보라고 가져온 거야. 그 판을 받고 1주일 동안 그것만 들었어. 완전히 빨려 들어가서."

 

레너드 코언의 영향은 상당했다.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훨씬 더 강해졌다. 그는 통기타로 곡을 쓰고 노래를 했다. '바람 부는 길', '마지막 노래', '작은 배' 같은 노래들이 그때쯤 만들어졌다. 그 뒤 나현구 사장이 경영하던 '오리엔트 프로덕션'에서 한 달에 두 곡 정도를 만들면서 월급을 받았다. 그렇게 만든 노래를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최헌, 이수만 등이 먼저 불렀다. 뒤에 조동진이란 이름을 널리 알린 '행복한 사람'은 원래 김세환에게 주려고 했던 노래다. 회사에서도 큰 기대를 가졌지만 김세환이 여러 이유로 활동을 못하게 되자 결국 자신의 첫 정규 앨범에 수록했다. "어이없게 그걸로 먹고살았다"고 할 만큼 그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우리는 소리에 대해서 처음부터 관심이 많았어. 오리엔트 시절부터. 동방의 빛 멤버들인 (강)근식이나 (조)원익이나 (이)호준이나 나나 다 소리에 관심이 많아가지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보려고 했다고. 무그(전자회로를 응용한 건반악기)로 만든 소리에 관심이 많아서 밤새우고 그런 음반들을 듣고 우리 나름대로 연구를 했었어.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이만큼 못했을 거라고. '이런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했으니까 사운드가 남들하고 다를 수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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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팝송> 1981년 6월호에 실렸던 동료 음악인들과의 인터뷰. 푸른곰팡이 제공

 

조동진에 대한 또 다른 고정관념 혹은 편견은 그를 오래된 통기타 가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젊고 진보적인 사운드를 구현했는지는 음악에 귀 기울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소문난 '얼리 어답터'였고, 하나음악(푸른곰팡이 전신)의 후배들에게 늘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곤 했다. 잘 상상이 안 되지만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빨리 접하고 몰두한 것도 그였다. 음악이든 기술이든 그는 '최신'이라는 경향에서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다.

 

"나는 최근에 만들어진 게 항상 좋아. 카메라도 똑같아. 사람들이 라이카 카메라 좋다고 하지만 난 불편해서 못 쓰겠어. 최근에 만들어진 카메라가 제일 좋은 거야. 사람들이 날 생각할 때 굉장히 '올드'할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웃음). 물론 올드한 것의 소중함은 열 번 말해도 부족함이 없어. 지금 모든 문제가 올드한 걸 무시하는 데서 나오는 거거든.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는데, 나는 거기에서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는 거지."

 

최근에 공개한 리마스터링 전집은 조동진의 이력과 성향이 모두 더해진 마지막 작업이다. 그에게 '디지털'은 매력적인 낱말이다. 아날로그 릴 테이프로는 하기 어려웠던 작업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하니 새로운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여러모로 디지털을 좋아한다니까. 굉장히 혜택을 많이 보고, 나 같은 사람한테는 세상에 이처럼 좋은 게 없는 거야"라고 말할 만큼 과거와 비교해 섬세하게 사운드를 다듬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번 리마스터링 작업은 과거의 아쉬움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때는 현실적인 여건상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사운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이번 작업으로 한층 더 아티스트의 의도에 가깝게 사운드가 재구성되었다.

 

 

"난 최근에 녹음한 게 제일 좋아. 밸런스며, 소리의 명료함이며 그런 것들이 너무 좋은 거야. 원래 작곡가가 생각했던 게 이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거지. 노래를 녹음한 입장에서 생각해도 그래.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예전엔 그게 안 된 거야. 기계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건데, 기계의 발전은 그 한계를 극복해주거든. '네가 이런 걸 원했었지?' 하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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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앨범을 출시한 1979년. 푸른곰팡이 제공

 

그의 이야기는 좋은 소리에 대한 지론으로 이어졌다. 마치 후배들에게 해주는 대선배의 마지막 조언처럼 들렸다.

 

"소리란 게 어떤 한 소리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열 개의 소리, 스무 개의 소리가 종합적으로 합쳐졌을 때 느낌이 제일 중요한 거란 말이야. 그게 어려운 거지. 항상 그걸 감안하면서 진행을 해야 하는 거야. 이 소리 좋다고 해서 그거에만 빠져들면 나중에 섞어놨을 때 엉망진창이 되는 거야. 드럼도 드럼 머신만큼 좋은 드럼 소리가 없어 보여. 최고로 잘 치는 사람이 제일 좋은 드럼으로 친 걸 샘플로 뜬 거니까. 그런데 그걸로 녹음을 하고 보면 뭔가 허전해. 나중에 발견한 게 뭐냐면 진짜 드럼을 칠 때 톰톰을 치면 스네어도 같이 떨리는 소리가 있는데 드럼 머신은 이게 없는 거야. 그 소리가 없으니까 허전한 거야. 그만큼 잡음조차도 중요하다는 거지. 소리 하나씩 좋게 해봐야 말짱 꽝이란 얘기야. 그 모든 잡음까지도 감안하면서 진행해야 하거든. 그거는 경험밖에는 방법이 없어."

 

이미 세상을 떠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좀 서글퍼졌다. 리마스터링 작업을 한 근본적인 이유는 좋은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소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동진 같은 음악가가 "릴 테이프 들고 이 스튜디오 저 스튜디오를 전전했다"고 말한 것은 믿기조차 어렵다. 그가 만들고 부른 노래의 음원은 판권마저 복잡하게 꼬여 있다고 한다. 이 모두를 해결하려고 한 작업이 이번 리마스터링 전집이다. 그래서 이 전집은 마치 그의 유언처럼 느껴진다. 이 유언 같은 전집은 1000세트 한정으로 9월16일 조동진 추모 공연에서 판매된다.

 

인터뷰 정리 김학선 객원기자, 신현준·이기웅/대중음악 연구자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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