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Deep Purple(딥퍼플) - 뉴스/칼럼 - 모터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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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레전드] Deep Purple(딥퍼플)
4년 전 조회 3,486 댓글 0

[Smoke on the water - Live]

 

Deep Purple은 하드록의 형식미를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초대형그룹이자 록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전설로 추앙받는 밴드로, 70년대를 통해서 고출력의 헤비메틀 음악을 잉태시켜 활약하였습니다.

또 Led Zeppelin과 더불어 1970년대를 이끌던 양대산맥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거의 대부분의 록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적 지침으로 Led Zeplelin과 Deep Purple 두 그룹을 꼽을 만큼 이들이 역사에 남긴 궤적은 크고 깊기만 합니다.

한편 Deep Purple은 하드 록의 제왕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한때 기네스 북 공인의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그룹으로도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Deep Purple은 영국 출신의 록밴드로서 많은 멤버들이 거쳐가면서도 그들은 Deep Purple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전설이 된 그룹으로 ‘Deep Pulple을 거쳐간 멤버들을 꿰고 있는 것은 영국 하드록의 계보를 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 이야기가 있었을 만큼 Deep Purple을 거쳐간 멤버들의 활동도 하드록 역사에서 기억될만한 활동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Led Zeplelin이 커다란 멤버 변동없이 꾸준하게 1970년대에 충분한 전성기를 구가한 후 존 보냄이 사망한 뒤에 해체를 한 후 커다란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이에 반해 Deep Pulple은 멤버 변화가 많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이들의 음악적 변화는 4단계로 구분해서 살펴볼 정도로 복잡한 밴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1기는 데뷔앨범에서 3번째 앨범 [Deep Purple]까지로 이때는 Jon Lord가 사운드의 실권을 쥐고, J.S. 바흐 등 클래시컬 음악에 기반을 둔 이른바 바로크 하드록의 시초가 되는 음악을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제 2기는 70년의 [In Rock]에서 [Machine Head]까지로 이 때는 본격적인 하드록 그룹으로서 공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으며 밴드의 실권은 Jon Lord에서 Ritchie Blackmore 쪽으로 사운드의 실권이 넘어간 시기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제 3기는 보컬과 베이스의 멤버 교체로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소울적으로 되어가던 시기, 제 4기는 정통 하드록에서 자꾸 이탈하려는 Deep Purple 노선에 반대하고 그룹을 떠난 Ritchie Blackmore, 그리고 그 후임으로 가입한 Tommy Bolin의 등장으로 사운드가 소울에서 아메리칸 록의 형태까지 수용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Deep Purple은 정규 클래식 수업을 착실히 쌓은 건반주자 Jon Lord, 세션 기타 등으로 인해 명성을 얻던 Ritchie Blackmore, 그리고 드러머 Ian Paice 등을 주축으로 67년 말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룹의 기타리스트 Ritchie Blackmore는 1945년 4월 14일 영국의 웨스턴 수퍼 메어에서 태어나서 11세 때부터 기타를 잡았으며 17세 때는 벌써 세션 연주인으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몇 년간 Screaming Lord Sutch의 일원으로서 활동한 후에 독일의 함부르크로 옮겨 갔는데, 1968년 3월 그곳에서 Deep purple을 결성한 것입니다. 또한 건반주자인 Jon Lord는 Keef Hartley가 소속되어 있었던 아트우즈 그룹에서 4년 동안 연주해온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Deep Purple의 초기 라인업은 Jon Lord(K), Ritchie Blackmore(G), Ian Paice(D), Rod Evans(V), Nick Simper(B)였습니다.

이들의 68년 8월 데뷔앨범 [Shapes Of Deep Purple]을 발표해 조 사우스(Joe South)의 ’Hush’(빌보드 4위, 캐나다 2위)등을 크게 히트시키며 주목을 끌었으며 Deep Purple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해 말에 미국 연주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래 'Hush'는 20년뒤인 1988년에도 다시 녹음되었는데 그 때에는 Ian Gillan에 의해 불러졌으며 영국챠트 62위에 다시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Deep Purple뿐만 아니라 여러 가수에 의해 불려지고 몇몇 영화에 쓰였으며 국내 CF에도 쓰여 꽤 친숙한 곡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1968년 발매한 2집 [The Book Of Taliesyn]에서도 바로크풍의 테마에 기반한 클래시컬 록을 구사해 높은 음악적 평가를 얻어냈는데, 역시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Kentucky woman’이 수록되어 오리지널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얻어내었고 ‘River deep-Mountain high’는 스트라우스의 교향시 일부를 도입하는 음악적 감각을 발휘하였고 미국에서의 인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많지 않았는데 2번째 앨범이 발매된 이후 6개월이 지나서야 영국에서 발매가 되었고 ‘Kentucky woman’이 히트하고 나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에는 클래시컬 록의 불멸의 대작 ‘April’을 수록한 세 번째 앨범 [Deep Purple]을 발표하였습니다. 

 

Deep Purple의 1기는 Jon Lord(K), Ritchie Blackmore(G), Ian Paice(D), Rod Evans(V), Nick Simper(B)로 구성되었으며 이 시기의 Deep Purple은 평범한 록밴드였고 히트곡 대부분도 리메이크 버전이었다.

 

 

3집 [Deep Purple]은 이전까지와 다르게 전부 자작곡들로 채워져있으며 클래식 풍의 대곡 'April'은 당시 크게 히트한 곡은 아니지만 1기 Deep Purple만의 색채를 맛볼 수 있는 곡이다.

 

번째 앨범은 15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Hi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기쁨의 정원’을 일부를 차용하여 인상적인 앨범커버아트를 만들었는데, 1기 Deep Purple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고 그 후 Rod Evans와 Nick Simper이 그룹을 탈퇴하였습니다.

 

Deep Purple 1기 때에는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Kentucky woman’(38위)와 ‘Hey Joe’,, 비틀즈의 ‘Exposition/We can make it out’, 팝 클래식 ‘River deep-Mountain high’(53위)등이 히트하였는데 상당수가 리메이크 곡이었다는 사실(당시 리메이크가 유행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음)은 1기 시절 이들이 Deep Purple의 사운드를 아직 완전히 정립시키지는 못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임을 말해주는 것이었고 영국에서도 이들의 입지가 확고했던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보여준 ‘April’과 ‘Anthem’ 등 존 로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클래시컬한 넘버들도 있었는데 커다란 인기는 누리지 못했어도 Deep Purple 초기의 클래시컬한 음악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때즈음 Rod Evans와 Nick Simper의 후임으로 Ian Gillan과 Roger Glover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되었으며, Rod Evans는 Deep Purple 탈퇴 후 미국으로 이주해 LA에서 Captain Beyond를, Nick Simper는 그룹 Horse를 결성해 활동을 하였습니다.

 

1969년 9월 24일 영국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동공연을 가졌는데 이 때의 실황으로 발매된 것이 4번째 앨범인 [Concerto For Group & Orchestra]입니다.

이 때 연주회의 관객 대부분은 Deep Purple의 공연이 아닌 로열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정장 차림으로 왔는데 Ian Gillan과 Roger Glover가 클래식과 협연하는 모습을 보자 무척 당황해 했다고 합니다.

전 악장을 존 로드가 작곡,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도맡아 음악계에 크나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발매된 그들의 네 번째 앨범은 록 뮤지션이 기존의 클래식 작품을 어레인지해 연주하며 ‘클래시컬 록’이라고 일컫던 것에서 탈피해, 록 뮤지션 자신이 클래식 작품을 만들고 거기에 강력한 록 비트와 사운드를 접목시킴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록과 클래식의 융합을 최초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70년에 들어와 Deep Purple은 자신들을 하드로커로서 변모시키는데, 이는 이전까지 그들이 추구했던 클래식과 록을 접목한 음악 스타일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이 조각된 러쉬모어산을 배경으로 멤버들을 조각한 커버아트를 한 [In Rock]을 공개하였습니다.

이 앨범에는 불멸의 명곡이라 할 수 있는 Jon의 영롱하고 의미심장한 건반과 Ian의 내지르는 부르짖음이 매치된 ‘Child In Time’이 수록되어 있고 ‘Speed King'이 수록되어 사랑받았으며 앨범 자체는 헤비메틀에 한층 더 다가서며 Deep Purple의 화려한 2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1971년에는 Deep Purple의 Roger Glover가 직접 커버아트를 담당한 [Fireball]이 발매되었는데 전작보다 더욱 다양한 음악적 모습을 보여주려하였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영국에서도 챠트 1위를 기록하였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인정을 받은 최초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또한 New Musical Express지로 부터 Best Disign Album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에 공개된 이 앨범으로 Roger Glover가 디자인하였다. [In Rock]과 [Machine Head]사이에 발매되었으며 Deep Purple의 팬에게는 이 앨범 역시 전후에 공개된 앨범 못지 않게 중요한 앨범으로 인식된다.

 



1972년에 공개된 [Machine Head]는 Deep Purple의 대표작인 동시에 헤비메틀을 대표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는 'Smoke On Water'가 수록되었는데 노래 자체보다 기타소리가 더 유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1972년에는 하드록/헤비메틀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명반 [Machine Head]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녹음하던 곳인 스위스 몬트뢰의 빌딩에서 실제 겪은 화재를 소재로 하여 쓴 곡이 있는데 제네바 호숫가에 위치한 그 몬트뢰 카지노 빌딩에서 프랭크 자파의 공연이 벌어졌을 때 불이 나면서 타오른 연기가 그의 눈에 '물위의 연기'로 비쳐진 모습을 생각하여 Ian Gillan이 쓴 곡이 수록 되었습니다.

그 곡이 그 유명한 ‘Smoke On The Water’로 이 곡은 73년 전미 싱글차트 4위에 올랐고 영국에서 앨범이 챠트정상을 차지하였습니다.

이 곡의 기타리프는 많은 뮤지션이 모태로 삼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고, ‘헤비메틀의 교과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반면 이 곡은 미국에서만 싱글로 발매되어 미국그룹이라는 오해도 샀지만 이 곡은 해당 장르에서 영원한 고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시 하드록의 고전인 ‘Highway Star’가 수록된 앨범이기도 한데, 이 곡은 1971년 버스 이동 중에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건 잘 모르겠고 분명 하드록의 전형으로 불릴만큼 훌륭한 곡이 아닐까 합니다.  

 

 

[Highway star - Live in Japan]

 

 

 

 

2기는 Ian Gillan과 Roger Glover가 가입하며 시작되었는데 이 시기에 Deep Purple은 하드록 역사의 길이남을 명반을 생산한다.

그러나 Deep Purple은 잦은 멤버 교체를 겪었는데 2기때부터 두드러졌던 Ritchie의 독선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찌되었든 1기에서 2기로 넘어오며 밴드의 주도권은 Jon에서 Ritchie로 넘어갔지만 하드록의 명반을 양산하던 2기도 마감하면서 Deep Purple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1972년 일본의 공연은 대성황을 이룬 성공이었지만 이후 멤버들간에 언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공연 후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과 서로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기 멤버들은 차기작을 녹음하기 위해 조용한 녹음환경을 위하여 이탈리아의 작은 소도시에 녹음실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은 어떻게든 알고 찾아왔는데 2기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 세션연주를 벌이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과 뜻이 맞는 멤버끼리만 방을 같이 쓰는가 하면 Ian Pace는 Ritchie Blackmore에게 'Deep Purple이 와해되면 서로 프로젝트를 꾸미자'는 말까지 주고 받아, 다음날 언론측에서는 이들의 해산에 대해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귀국자리에서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보컬 Ian Gillan은 Ritchie Blackmore와 뜻이 맞지 않아 '때려치우자'식으로까지 화를 냈다고 합니다.

 

1973년에는 7집 [Who Do We Think We Are]이 발매되었으며 결국 이 앨범은 Deep Purple의 결성 이래 최악의 성적을 받아들었습니다.

Ritchie Blackmore는 한 때  헤비메틀 그룹 Thin Lizzy의 베이시스트 필 리놋과 함께 블루스 록 프로젝트 그룹 Baby face를 결성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Deep Purple에 블루지한 느낌의 사운드를 넣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Ian Gillan과 Rodger Glover는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Ian Gillan은 [Who Do We Think We Are]과 라이브 앨범 [Made In Japan]을 내고 곧바로 나왔고, Rodger Glover도 이후 스스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Deep Purple에는 Ritchie Blackmore, Ian Pace, Jon Lord가 남았습니다.

 

결국 Deep Purple은 명반과 동시에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그 대가로 밴드 사상 가장 화려한 시절(겉으론 보기엔 분명)의 종말과 맞바꾸어야 했고 어쨌든 이들의 후임으로 당시 무명이었던 David Coverdale과 Glenn Hughes가 교체 멤버로 들어왔습니다. 본래 Deep Purple은 Paul Rodgers를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밴드에서 나온 Roger Glover는 후에 70년대 후반까지 [The Butterfly Ball]과 [Elements]를 녹음한 다음에 Rainbow에 가담하였고, Ian Gillan은 1980년도가 지날 때가지 'Child In Time', 'Scarabus', 그리고 ‘Glory Road'를 녹음하는데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Deep Purple은 Ian Gillan과 Rodger Glover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Melody Maker]지의 Deep Purple 멤버 모집 광고를 냈습니다.

그리하여 David Coverdale은 데모테잎을 통해, Glenn Hughes는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습니다.

 

 

David Coverdale은 1951년 9월 22일 영국의 오스요크셔에서 태어났으며, 미들즈브러 아트 스쿨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다가 레스토랑의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고 Faburosa라는 그룹에서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평범하게 보여지는 이 예술 전공 대학생은 늘씬한 키에 허스키한 보컬의 소유자였고 Deep Purple이 오디션을 하자마자 데모테잎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Ritchie Blackmore가 David Coverdale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수술을 권고했다는 소문이 있고,  David Coverdale의 데뷔전과 데뷔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하지만 정확히 알려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쨌든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사팔뜨기에 거지차림의 촌뜨기여서 Deep Purple은 자신들의 하드로커의 이미지에 맞게끔 David의 외모를 바꾸게 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Glenn Hughes는 1951년 8월 21일 영국의 스태포드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예전부터 음악생활을 하고 있었고 영국에서 꽤 유명한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록그룹 Trapeze에서 활동한 바 있는데 그는 그 그룹에서 베이스와 보컬을 동시에 맡기도 했으며 이 그룹은 69년 무디블루스의 미국투어에 오프닝밴드로 참여하고 이후 4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록계에서 지명도를 쌓아나갔습니다.

Ritchie Blackmore는 블루스록과 펑키 재즈의 매력에 빠져있던 상태였는데 David Coverdale과 Glenn Hughes는 그에 걸맞는 인재들이었습니다.

 

3기 Deep Purple에는 Glenn Hughes와 David Coverdale이 가입되었는데 이 시기를 최전성기인 2기와 비교하기는 어렵더라도 블루스록과 하드록을 구사하며 록계의 명반을 만들어내었다.

3기 Deep Purple의 시작을 알리던 이 앨범에서 David Coverdale이라는 무명 보컬을 발탁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Burn'은 3기 Deep Purple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Stormbringer]은 다양한 시도를 한 앨범으로 팬들에게 다소간에 실망간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이 앨범에는 그들을 국내에 널리 알린 'Soldier Of Fortune'라는 곡이 실려있다.

 

 

어쨌든 Deep Purple 3기의 시작을 알리는 74년의 첫 음반 [Burn]은 Deep purple 사운드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해준 명반으로서, 이 한 장으로 인해 일개 촌뜨기였던 David Coverdale은 로버트 플랜트와 폴 로저스 등을 위협하는 세계적인 보컬리스트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소울풀한 가창력을 뽐내던 블루지한 창법의 소유자 David Coverdale의 보컬은 이전의 Ian Gillan과는 확실히 다른 색깔이었지만 원초적인 외침을 연상케 하는 파워풀한 목소리는 이안의 그것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음악적 방향의 전환은 많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는 반면 나름대로의 인기를 더욱 구가하게 되었는데 3기 시절의 Deep Purple의 하이웨이 스타라고 할 만큼 딥퍼플을 대표하는 명곡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곡이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된 ‘Burn’입니다.

 

이 곡은 David Coverdale의 매력적인 보이스와 더불어 건반과 기타의 숨돌릴 틈없는 조화가 매치되어 그들의 최고점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곡으로 바로크 메틀의 기초를 다지게 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1974년에는 [Stormbringer]를 발표하였습니다.

앨범에서는 'Stormbringer', 'Soldier Of Fortune' 등의 히트곡들을 수록해, 역시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고 Soldier Of Fortune'은 국내에서 커다란 인기를 끈 그들의 발라드곡이 되었는데 영단어로 '청탁을 받거나 임무를 띠고 있는 용병'이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인'으로 해석되어 과거 현충일에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들려졌다고 합니다.

 

이 앨범은 블루스등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한 앨범으로 인식되는 작품이기도 한데, 사운드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Ritchie Blackmore가 작곡에서 제외된 곡이 2곡이 실리며 밴드 내에서 그만큼 Ritchie의 입지가 줄어들었음을 알려주었고 그만큼이나 Ritchie는 이 앨범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이들 3기의 라이브 실황앨범으로는 [Made In Europe], [Live In Paris 1975]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총 활동 기간은 대략 1973년부터 1975, 3년정도의 기간이지만 기간동안 꽤나 많은 앨범 작업, 그리고 라이브 실황 앨범들의 자료가 된 성공적인 세계투어가 있었기에 '짧은 시간 안에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Deep Purple 역대 기수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기'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Deep Purple은 '블루스 록에 좀 더 전문적으로 변모하는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었고, 반면 또다시 팀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는 양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Ritchie Blackmore가 탈퇴하였는데  이 역시 Ritchie Blackmore와 나머지 멤버들의 트러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3기시절 David Coverdale와 Glenn Hughes가 빅스타가 되었고, 그러는 사이 각자의 이권을 챙기려는 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게다가 Ritchie Blackmore가 두 신입 멤버의 성장에 뒤따른 불안감과 음악적 견해의 차이에 의해 불같이 화를 내며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양상이 달랐는데 Ritchie Blackmore와 함께 뜻을 같이 하던 Jon Lord와 Ian Pace가 David Coverdale과 Glenn Hughes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고 Ritchie Blackmore는 그룹의 창시자로서 본인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멤버들과의 갈등이 심해진 Ritchie Blackmore가 갑작스럽게 그룹을 탈퇴해버려 매스컴에서는 “Deep Purple 해산!" 이라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Deep Purple의 3기는 정규 스튜디오 앨범으로 [Burn]과 [Stormbringer]를 내놓았고 모두 하드록과 블루스록의 명작이라는 고평가 및 상업적 성과를 이끌어내며 막을 내렸습니다.

 

 

[Burn - Live in California]

 

 

버들은 장시간동안 수많은 기타리스트를 오디션 해본 끝에 James Gang 출신의 Tommy Bolin을 후임기타리스트로 내정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출신으로 재즈 퓨전이라는, 재즈 록과 펑키 재즈로 이뤄진 장르의 대가였는데 Tommy Bolin은 그 전에 솔로로서 앨범 한 질을 내었으며, James Gang과는 두 장의 앨범을 출반했었습니다.

 

Tommy Bolin의 흑인 음악에 기원을 둔 부드러운 기타 연주는 분명 Deep Purple 4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루스 록 정통 앨범 [Come Taste The Band]를 완성하였고, Tommy Bolin이 Deep Purple의 일원으로서 만든 이 앨범에는 그가 작곡했거나 또는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 일곱 곡이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재즈와 퓨전, 하드록 등의 그룹 및 세션경험이 있는 Tommy의 연주는 앨범에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어찌되었든 Tommy와 Deep Purple의 음악적 코드가 맞아떨어져 발매된 앨범이 [Come Taste The Band]였는데 앨범 자체는 Deep Purple의 작품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으로 인식되는가 하면 Tommy의 기타플레이는 Ritchie만큼의 강렬한 이미지를 창출해내지는 못했고 더러는 그들의 모습에 많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Deep Purple은 칭찬 반, 비판 반을 들으며, 활동을 계속하다가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Ritchie Blackmore라는 유능하고 훌륭한 리더의 부재가 그룹의 종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후 Tommy Bolin은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Private Eyes]를 녹음한 뒤에 그 선전을 위한 연주 여행을 하던 중에 사망하였는데, 그것은 1976년 12월 4일 마이애미에서였으며, 약물 과용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Jon Lord는 후에 토니 애쉬톤과, Deep purple의 전 드러머 Ian Paice, 그리고 베이시스트 폴 마티네스와 함께 모여서 [Malice In Wonderland]를 출반하였습니다.

 

Ritchie Blackmore가 조직한 Rainbow로

Ronnie James Dio를 보컬로 기용하여 그룹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중세의 기품과 클래시컬한 작품이 격렬한 헤비메틀에 실려 최강의 사운드를 들려주어 하드록의 명반을 만들어낸 그룹이다.

 

David Coverdale이 조직한 Whitesnake로 초기에 블루스 소울 성향이 강한 밴드로 출발했으나 [1987]앨범으로 폭발적인 브리티쉬 헤비메탈을 구사하며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얻은 영국메틀밴드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Ritchie Blackmore는 Dio가 속한 Elf의 멤버들과 함께 Rainbow를 창단하여 폴리도나 오이스터 레코드사 등에서 녹음 활동을 하였는데, ‘Temple Of The King', 'Catch The Rainbow'가 수록되어 록의 대표적인 명반인 데뷔앨범 [Ritchie Blackmore’s Rainbow]를 발매하였고 이후 그룹 최고의 명반인 [Rainbow Rising]를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Ritchie Blackmore의 괴팍한 성미와 독재에 참을 수가 없었는지 Rainbow는 빈번한 멤버교체를 겪었는데, 1975년 9월에는 드러머 Cozy Powell이 추가되어 들어왓고, 1979년 4월에는 베이시스트 Roger Glover가 들어와서 증원되었으나, 1981년에 Cozy Powell이 다시 그룹을 떠났습니다.

Cozy Powell은 크림의 전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와 험블 파이의 전 기타리스트 데이브 ‘클램’ 클램프슨과 팀을 이루어서 [Over The Top]을 녹음하였습니다.

 

한편, 1978년 1월에 David Coverdale은 Whitesnake그룹을 결성하여 그해 8월에는 Jon Lord를 맞아들였고 나중에는 Ian Paice도 가담시켰는데 이 그룹은 이후 80년대 상업적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영국밴드로 거듭나게 되고, 1987년에 발매한 [Whitesnake]는 그룹 최고의 베스트 셀링을 기록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헤비메틀밴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4년 Ian Gillan - Ritchie Blackmore - Roger Glover - Ian Paice - Jon Lord 등 전성시절의 라인업으로 다시 뭉쳐 록계에 컴백, [Perfect Strangers]를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워낙 음악적 개성들이 강한 탁월한 뮤지션들의 결합이라 87년 [Huouse Of Blue Light]을 끝으로 Ian Gillan은 다시 그룹을 탈퇴하고, Rainbow 출신의 Joe Lynn Turner가 가입해 90년 [Slaves And Masters]를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Joe Lynn Turner 역시 노장 Deep Purple의 멤버들 틈에 끼여 오래있지 못하고 탈퇴하고 Ian Gillan이 다시 Deep Purple에 합류했습니다.

Ian Gillan의 가입으로 Deep purple은 다시 전성시절의 라인업으로 되어 93년에 신작 [The Battle Rages On]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타리스트 Ritchie Blackmore가 그룹을 탈퇴해 Deep purple 측은 명 기타리스트 Joe Satriani를 초빙해 남은 라이브 일정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 sea2138 글.

- 모터핑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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