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Led Zeppelin(레드 제플린) - 뉴스/칼럼 - 모터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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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레전드] Led Zeppelin(레드 제플린)
4년 전 조회 3,550 댓글 0

[Rock n' roll Live 1973]

 

Led Zeppelin은 록의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년대가 Elvis Presley로 대표된다면 60년대는 Beatles와 Rolling Stones로, 그리고 70년대는 바로 Led Zeppelin과 Deep Purple로 대표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록을 들을 때에 과거에는 Led Zeppelin은 꼭 들어야 할 통과의례격인 밴드로 이해되기도 하였고, Led Zeppelin이라는 그룹명만으로도 록씬에서의 존재감이나 록팬들의 마음 속에 차지하는 이들의 위치는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신화를 낳은 그룹인만큼 멤버들의 경력도 화려합니다. 이 그룹은 과거 Yardbirds라는 그룹에서 파생된 그룹으로 Yardbirds 역시 전설적인 록그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Jimmy Page는 영국내에서 알아주는 세션맨이었는데 10대부터 일찍이 기타를 다루기 시작했으며, 후에 닐 크리스찬과 크루세이더즈와 함께 연주활동을 한 다음에 예술 대학에 2년간 다녔습니다.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는 곧 세션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1965년 사이에 영국에서 발매된 모든 음반들의 50~90%를 연주한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Jimmy Page는 세션맨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인 뮤지션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세션맨으로서 참여한 음반들에는 Who의 [I Can't Explain], 뎀의 [Gloria], [Here Comes The Night], [Baby, Please Don't Go]등을 비롯하여 킹크스, 롤링 스톤즈, 허먼과 허미츠의 표제 미상의 여러 음반들이 있었습니다.

 

 

 

Yardbirds는 블로스하드록, 사이키델릭 등

갖가지 중요한 록 사조의 효시가 되는 밴드로

Led Zeppelin, Cream, Jeff Beck, Eric Clapton등이

이 밴드를 근간으로 한다.

 

 

1965년에 Eric Clapton을 대신하여 Yardbirds의 멤버로 가담할 것을 제의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였는데, 그 해에 그는 앤드류 올드햄의 이미디어트 레코드사에서 전속 제작자 겸 편곡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66년 중반에 그는 Yardbirds에 가담하여 그룹을 떠난 Paul Samwell Smith를 대신하여 베이스를 맡게 되었으나, Chris Dreja가 베이스를 이어 받은 후부터는 Jeff Beck과 함께 2중주의 리드 기타를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Jeff Beck과 Jimmy Page가 참여한 Yardbirds의 음반들에는 [Rave Up] 중의 ‘The Train Kept',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 [Blow-up]중의 ’Stroll On', 그리고 ‘Happenings Ten Years Time Ago'등이 있습니다.

 

그 2중주 리드기타 대형은 후에 올맨브라더스를 비롯한 수많은 그룹들이 모방하게 되는 최초의 선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Jimmy Page는 Yardbirds 시절부터 이미 바이올린 활을 가지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쇼킹한 방법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6년 말에 Jeff Beck이 Yardbirds를 떠났고 Jimmy Page 혼자서 그룹의 리드 기타를 계속하며 18개월 동안을 보내게 되었는데 1968년 7월에 결국 Yardbirds가 해체되자 Page와 Dreja는 보컬리스트겸 기타리스트인 테리 리드, 드러머 프랜시스와 함께 ’뉴 야드버즈‘로 그룹을 지속시키려고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테리 리드는 자신이 그룹의 가입하는 것에 대해 여의치 않았던 터라 그 대신 The Band Of Joy 출신의 Robert Plant를 기용할 것을 제의하였는데, Robert Plant는 특유의 야성적인 액션과 파격적인 블루스 창법으로 언더 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Dreja도 후에 그룹을 탈퇴하여 사진사가 되었고 스튜디오 연주가인 베이시스트 겸 키보디스트 John Paul Jones로 대체되었는데 베이시스트 John Paul Jones 역시 활발한 세션활동 및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었고 그가 관여한 음악 중에는 Herman's Hermits의 영화음악도 있었습니다.

 

드러머 John Bonham도 팀 로즈에서 활동하며 그 때부터 이미 그 특유의 헤비드러밍을 다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들 네 명은 농담삼아 한 말 ‘납으로 만든 채펄린 비행선은 추락할 것’이라고 한 것에 유래하여 그룹명을 Led Zeppelin이라 이름짓고 본격적인 고공비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Jimmy Page는 제프 벡의 [Beck's Bolero], 도노번의 [Hurdy Gurdy Man], 그리고 조 카커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등의 취입을 위한 세션연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Jimmy Page의 명성과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추천으로 [Atlantic] 레이블과 어렵지 않게 계약할 수 있었고 68년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레코딩된 셀프 타이틀의 데뷔앨범은 68년에 완성되어 미국에는 69년 1월, 영국에서는 3월에 각각 공개되었습니다.

앨범 자켓 디자인은 The Who의 존 앤트위슬과 키스 문(이 두 사람은 레드제플린이란 그룹명을 지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의 아이디어로 완성되었습니다.

 

[Whole lotta love - Live at Royal Albert Hall 1970]

 

1969년 6월 Led Zeppelin은 BBC 라디오 방송의 콘서트 프로그램에 3회 연속 출연했는데, 이렇듯 한달동안에 세 번이나 한 밴드가 출연한 예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라이브 공연장은 연일 매진이었고 이러한 인기덕분에 데뷔앨범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1백만장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100시간 남짓의 시간에 350파운드의 비용으로 제작한 데뷔 앨범으로 이들이 얻은 수익은 20000배에 달한 것이었습니다.

Led Zeppelin의 데뷔 앨범은 단숨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거기에는 그들의 첫 미국 싱글 챠트 진입곡인 'Good Times Bad Times’와 고전이 된 ‘Dazde And Confused', 그리고 ’Communication Breakdown' 등이 주된 곡들로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1969년 초에 그들은 처음으로 미국 순회 공연을 하였는데, 이 때는 Vanilla Fudge의 백 밴드였지만 곧 독립된 밴드가 되었으며 그 이후 곧 Led Zeppelin의 성장과 어울러 헤비 메탈/록 장르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937년 세상에서 가장 큰 비행선인

힌덴부르크호가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저지에 착륙하려다 폭발한 사진을

포착하여 커버를 만든 데뷔앨범이다.

 

헤비메틀사에 가장 위대한 보컬인

Robert Plant는 초자연적인 신비와

심령 현상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으며

악마주의자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집에서

머무르기도 하였다.

 

 

또한 Led Zeppelin의 데뷔앨범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에게 ‘역사상 가장 잘 만들어진 데뷔 앨범’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납으로 만든 비행선의 이륙은 그 어떤 그룹의 비상보다 화려했습니다.

 

 

장 뛰어난 데뷔앨범에 못지 않은 2번째 앨범은 1969년에 나왔는데 데뷔앨범의 히트로 2집이 나오기전부터 예약주문이 35만 장이라는 전대미문의 반응을 기록했습니다.

[Led Zepplin II] 앨범에는 대히트곡 ‘Whole Lotta Love'는 물론이고 ’Living Loving Maid(She's Just A Woman)', 그리고 'Ramble On'등도 수록되었습니다.

 

이 두 번째 앨범은 발매된 지 불과 몇 일만에 플래티넘을 땄는데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 때문에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69년과 70년에 각각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를 들어 크게 표창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자신들의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결정한 Led Zeppelin은 1970년 3월에 다섯 번째의 미국 순회 공연을 하였으며 레코드 회사와 영국에서는 상업적인 욕심으로 계속 싱글 발매를 권유했지만 멤버들은 굳이 싱글로 내놓을 곡도 없을 뿐더러, 싱글 발매를 음반을 팔아먹기 위한 상술의 하나로 보고 자신들의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1970년 9월, 내셔널 팝스에서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 Led Zeppelin은 8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영국과 세계 차트를 석권하던 Beatles를 제치고 1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Led Zeppelin의 멤버들 또한 멜로디 메이커 지의 연주자 랭킹에서 상위에 올라 있었고, 표지도 Led Zeppelin의 차지였으며 그 해 모든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Led Zeppelin은 영국에서 Heavy Rocks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레드 제플린은 두 번 째 앨범이 미국에서

올린 엄청난 앨범 판매 수익으로 인해 영국

정부로부터 두 번째의 플래티넘 앨범과

또 하나의 골드 디스크를 받게 되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1위를 기록하는 명실공히 전 세계

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반이 되었다.

 

Led Zepelin은 Deep Purple, Black Sabath와 더불어 헤비메틀을 형식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밴드로 여겨진다.

 

 

70년 미국투어를 마친 Led Zeppelin은 세 번째 앨범구상에 들어갔습니다.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생활하며 아이디어를 짜낸 이들은 그 해 5월부터 스튜디오 녹음에 들어가 10월경에 제작을 끝내고 판매에 들어갔습니다.

'Immigrant Song', ‘Since I've Been Loving You', 'Tangerine', 'Celebrntion Day'등등이 수록된 이 앨범도 발매되기가 무섭게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으며, 미국시장을 겨냥한 듯이 이 앨범은 미국적이며 서정적인 정서가 깔린 작품이 되었습니다.

 

 1971년 발매된 [Led Zeppelin IV]은 여러모로 록계에 화제거리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앨범으로 더러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앨범은 자켓에 타이틀이 쓰여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룹의 이름까지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이 앨범은 금새 소문을 물고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Stairway To Heaven'이 이 앨범 속에서 걸작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Rock N' Roll'은 47위, 'Black Dog'은 15위, 앨범은 챠트 2위에 랭크되며 700만장이 판매되는 대히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앨범은 스스로도 ‘헤비메틀의 전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지금까지도 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보아야 할 명반이 되었으며 즉석에서 생각해내어 Robert Plant가 노랫말을 쓴 ‘Stairway To Heaven'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필자는 예전에 [Ultimate Rock Ballads 4]라는 앨범을 통해 Led Zepplelin의 곡이 아닌 Various Artist의 ‘Stairway To Heaven'를 들었을 때 끈적끈적한듯한 느낌이 별로라 그냥 이 곡을 지나쳐 돌려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에서 생각하면 Led Zepplelin 이후에도 수많은 후배 밴드들이 많은 발라드를 자작했지만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뛰어넘는 곡은 사실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명곡 ‘Rock N' Roll’은 곡 자체가 주는 감흥과 연주만으로도 Led Zepplelin이란 그룹이 얼마나 수많은 밴드에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70년에 발매한 3번째 앨범으로 어쿠스틱

하면서도 상업적 방향으로 선회한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영국과 미국에서 챠트 1위를

하였다.

 

1971년에 발매한 4번째 앨범으로 그 유명한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되었으며

앨범 표지 속의 노인은 현대의 은둔자를

뜻한다고 한다.

 

  

1972년 여름에 Led Zepplelin은 다시 미국 순회 공연을 하였는데 여러 도시에서 롤링 스톤즈를 능가하는 흥행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1972년에 취입했으나 1973년 초까지 출반하지 않았던 [Houses Of The Holy]앨범은 1973년 3월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Led Zepplelin이 현악기 세션을 처음으로 사용한 앨범인데 거의 순식간에 골드를 수상하게 되었던 이 앨범 역시 그룹명이나 멤버의 이름은 단 한자도 기입되어 있지 않았고, 4집때처럼 멤버들의 심벌마크가 기재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The Song Remains The Same'을 비롯 모두 8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가사가 인쇄된 카드를 붙여 판매해 유럽 및 대부분의 나라에서 역시 챠트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앨범 발표와 함께 33개 도시를 순회한 전미투어는 보잉회사에서 만든 72OB형 제트 여객기를 개조한 자가 비행기인 Starship One을 타고 이루어졌으며 이렇게 이루어진 1973년도 미국 순회 공연은 즉시 매진되었습니다.

 

Led Zepplelin은 1974년에 매니저 피터 그랜트와 함께 자신들의 Swan 송 레코드사를 설립하였는데, 음악 활동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했던 한 해가 되었습니다.

 

 

 

 1975년 초에는 여섯 번째 앨범이자 레드 제플린 최초의 더블 앨범이기도 한 [Physical Graffiti]이 Swan Song 레이블의 이름을 달고 공개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이번 앨범을 위해 특별히 작곡해둔 곡과 그동안 작곡을 해두었지만 앨범에 수록하려다 빠졌던 곡 30여 곡 중에서 다시 선별하여 수록한 앨범이라고 합니다.

 

멤버들은 앨범 판촉을 위해 ‘Trampled Under Foot'을 천 장 한 정 싱글로 내놓아, 앨범 20장을 사면 한 장씩 서비스하는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Led Zepplelin에게 새로운 전환이었는데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해왔던 평론가들까지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인도풍의 신비주의와 이국적인 정취가 감도는 색다른 맛도 느끼게 해주었고, 이 앨범은 록전문지 [Melody Maker]로부터 국내부문과 국제 부문에서 각각 ’최우수앨범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앨범 속에 수록된 Kashmir는 헤비한 웅장미가 돋보이는 곡으로 이 곡 하나만으로도 앨범을 빛나게 합니다.

그러나 리드 보컬리스트 Robert Plant가 그 해 말에 그리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게 되어 1년 이상 활동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에 발매된 5번째 앨범인

[HOUSE OF THE HOLY]로  영, 미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챠트 1위를 기록하였다.

이 앨범은 블로스, 포크, 록, 펑키, 신비한

분위기의 사운드와 레게적인 느낌까지 다양

한 음악 시도를 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Led Zeppelin의 팬들에 따라서 이 앨범이

최고의 앨범으로 꼽힌다. 그룹 최초의 더블앨범으로 1975년에 공개되었다.

Led Zeppelin의 음악성과 정서적 깊이까지

느낄 수 있는 앨범으로 앨범의 백미로

Kashmir가 있다.

 

 

 

[Kashmir - Live]

 

76년 4월에 공개된 [Presence]는 그 타이틀만큼이나 철학적인 것이었습니다.

앨범 자켓에는 열 장의 Situation사진이 사용되었는데 그 사진 한장한장마다 신비적이며 입체감을 주는 상징적 물건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앨범에도 ‘Tea For One', 'Achilles Last Stand'등의 대곡들이 수록되어 이들의 신비감을 더한층 높여주었습니다.

 

동년 10월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The Song Remains The Same'이 공개되었는데, 메이든 스퀘어 가든에서의 실황을 주로 담은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 앨범으로도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77년 7월 Robert Plant가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Led Zeppelin은 1년에 가까운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말았고 너무 침체기간이 길어지자 언론 등에서는 “Led Zeppelin 해산”을 예견하는 기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1977년에 Led Zeppelin은 또 한 차례의 미국 순회 공연을 하여 초만원의 군중에게 3시간이 소요되는 마라톤 연주를 정규적으로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그 기간 중에 불미스러운 난투극을 벌인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오클랜드의 콜리세움에서의 쇼 막간에 프로모터인 빌 그레이엄 측의 멤버 세사람이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 피터 그랜트와 드러머 John Bonham, 그리고 그룹을 수행한 다른 두 사람에 의해서 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오만하고 무분별하며 잘난 체하는 Led Zeppelin의 오명에 보탬이 되었을 뿐이었고, 그 이후 그룹의 활동은 저조하였습니다.

 

 

 

1979년의 [In Through The Out Door]로 레드 제플린은 재기하였는데 8월 20일 전 세계로 동시에 발매된 이 앨범은 역시 세계의 각종 록챠트에서 등장하여 한 달이 채 안된 9월 중순 영국과 미국에서 차트 1위를 점령했고, 미국에서는 7주 연속 1위 자리를 지키며 재기한 레드 제플린을 팬들이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의 모든 앨범들은 빌보드 앨범 챠트 200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와 더불어 각종 인기 투표를 휩쓸었습니다.

앨범내에서는 ‘Fool In The Rain'가 챠트 20위까지 올랐고 그 해말 멜로디 메이커 지에서 발표한 인기 투표에서 레드 제플린은 7개 부문의 탑에 오르며 여전한 인기를 과시하였습니다.

 

 

 

 1980년 9월 25일, Jimmy Page의 원저 집에서 John Bonham이 사망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술 잔치 후에 알콜중독에 의한 심장마비였습니다.

John Bonham의 죽음에 대해 언론은 '록 계의 커다란 별이 떨어졌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10월 10일 John Bonham의 장례식이 극비리에 이루어졌으며 영국의 매스컴들은 Led Zeppelin이 해산할 것이란 보도를 내고 곧 이어 John Bonham의 후임자가 곧 정해질 것으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해 12월 4일에 Led Zeppelin은 공식성명을 통해 John Bonham이 아닌 다른 누구와도 Led Zeppelin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수 없음을 밝히며 그룹은 해체되었습니다.

 

1976년에 공개된 7번째 앨범으로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플래티넘에

기록된 앨범이었다고 한다.

 

이 앨범은 예술 장르에서 그 종결을 뜻하는

Coda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달고 있다.

John Bonham이 사망한 이후 미발표곡들로

이루어진 앨범으로 이 앨범의 속지의 내용을

보면 Jimmy의 집에는 앨범 수십장을 제작

하고도 남을 미공개곡 녹음테잎과 라이브

녹음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Jimmy Page는 한 편의 영화음악을 녹음하였고 Robert Plant는 2집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각각 솔로 활동을 벌였으며 1982년 12월에는 Led Zeppelin의 미발표곡을 모아 [Coda]라는 이름으로 최후의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1980년 갑작스런 죽음을 당한 John Bonham을 추모하며 밴드의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마음으로 발표한 기념 앨범으로 그룹의 미발표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해산 후에 멤버들은 각자의 음악적 소질을 살려, Jimmy Page는 보컬리스트 Paul Rodgers와 함께 Firm을 결성했고 그 후에는 David Coverdale과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었으며, 로버트플랜트는 Honeydriffters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또한 John Paul Jones는 솔로 앨범 및 세션활동을 통해 그의 음악적 센스를 꾸준히 발휘하였습니다.

 

 

이렇듯 록계에 남긴 Led Zeppelin의 족적은 크기만 합니다.

1970년대 하드록을 완성한 그룹이자 향후 1980년대 헤비메틀 형성에 크게 기여한 밴드로 기억되고 있는데, 수많은 후배밴드들이 Led Zeppelin의 우산 아래 있습니다.

 

블루스에 음악적 뿌리를 두었던 Led Zeppelin은 민속 음악과 포크, 사이키델릭, 레게와 소울, 리듬 앤 블루스와 로커빌리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을 도입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완성했는데 밴드의 음악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은 여전히 하드 록이고 또 헤비 메탈이라 할 수 있습니다.

 

Led Zeppelin은 하드록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첫머리에 위치할 그룹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드록에 국한된 밴드도 아니어서 Led Zeppelin이 포괄하는 음악적 영역도 넓을뿐더러 몽환적이고 주술적인 신비주의적 경향 역시 보여주었습니다.

또 각자가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숱한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Robert Plant의 카리스마 가득한 목소리와 Jimmy Page의 능란한 기타 연주, 땅 속 깊은 곳까지 진동시킬 것만 같은 John Bonham의 강력한 드럼 연주, 그리고 안정된 베이스 리듬과 탁월한 키보드 어레인지로 풍요로움을 전해준 John Paul Jones의 역량이 결집하여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뛰어난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그룹이 결성되고 드러머의 사망으로 해체할 때까지 단 한번의 멤버교체가 없이 함께해 온 것만으로도 그들의 음악적 완성도만큼이나 활동에서도 끈끈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Led Zeppelin은 활동 기간 동안 발표된 아홉 장의 정규 앨범들 중, 최소한 데뷔작 [Led Zeppelin]에서 여섯 번째 앨범인 [Physical Graffiti]에 이르는 작품들은, 걸작으로 회자되며 상업성과 작품성을 여러 앨범에서 인정받은 그룹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밴드가 이룩한 것은 음악적인 성과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 레코드산업협회(RIAA)의 자료에 의하면 레드 제플린은 미국 내에서 지금까지 1억500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림으로써 1억6,450만 장을 기록한 비틀즈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아티스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단일 앨범 판매 순위를 보면,

[Led Zeppelin IV](’71)가 2,200만 장(4위)

[Physical Graffiti](’75)가 1,500만 장(21위)

[Led Zeppelin II](’69)가 1,200만 장(41위)

[Houses Of The Holy](’73)가 1,100만 장(49위)

[Led Zeppelin](’69)이 1,000만 장(70위)

무려 5장의 다이아몬드(900만 장 이상 판매) 앨범을 기록하고 있는데, 더욱이 상업적 메틀이 극치를 이루던 1980년대 이후의 후배밴드들에게서는 이와 비슷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낸 밴드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위 앨범들은 걸작이자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아 아직도 꾸준히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Stairway to heaven(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수록된

[ Zeppelin IV ] 앨범(LP)의 표지.

 

안쪽에는 한 노인이 등불을 들고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6각형별이 그려진 램프를

들고 있는 이 노인은 드루이드교(영혼의

불멸·윤회 ·전생을 믿고 죽음의 신을세계의

주재자로 받드는 고대 켈트족의 종교.)

드루이드 사제는 후에 고대 아이슬란드의

문학 중 하나인 사가 가운데서, 또는 기독교

전설 속에서 마술사로 표현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편 이렇게 완벽해보이는 그룹 Led Zeppelin은 단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그건 바로 표절의혹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Led Zeppelin의 곡들이 표절의혹에 휩싸인바 있고 그 곡들 대부분이 Led Zeppelin의 히트곡들입니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 Led Zeppelin에 대해 갑론을박 말이 많기도 한 것 같은데, 당시 인터넷만큼의 파급력이 상당한 언론매체가 없어서 이들의 표절 의혹이 그냥 그렇게 묻혀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글에선 유럽에서 ‘Led Zeppelin이 표절밴드로 불린다.’는 글도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Led Zeppelin의 표절 의혹이 진실로 밝혀졌던지 아니면 그냥 의혹만 남아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다루기엔 Led Zeppelin이란 그룹이 이젠 전설이 되어버려 표절로 그들을 건드려보는 것도 이젠 소모적인 논쟁처럼 느끼거나 혹은 ‘Led Zeppelin이 표절을 했던 안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냐.’ 식으로 시대가 변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표절과 관련하여 아예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Led Zeppelin 2]에 수록된 'Whole Lotta Love'라는 곡이 표절의혹에 휘말렸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12소절 형식의 단순한 패턴으로 반복진행되는 블루스라는 음악이 대부분 구전되어온 음악이고 오래 전에 일정 부분 차용해 왔고 가사나 편곡을 하여 자기 것으로 썼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블루스의 선구자인 윌리 딕슨의 곡을 트리뷰트하는 개념으로 두서너의 곡을 빌려왔다고 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원저작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채 곡이 앨범에 실려 발매하는 우를 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하여 상당수 Led Zeppelin의 곡들이 저작권자의 이의제기로 법정소송까지 갔었으나 Jimmy Page가 대부분 그전에 합의를 봤다고 합니다(진짜인지는...).

 

  그리고 영국의 BBC가 음악전문가와 팬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보컬/베이스/기타/드럼 등 각 파트별 최고의 뮤지션을 선정했는데, 그 파트마다 Led Zeppelin의 모든 멤버가 각 부문별로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Led Zeppelin이란 그룹은 1970년대를 풍미한 그룹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표절이라는 아티스트로서 가지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손 하더라도 그 사실을 뒤로 하고 앨범 자체로만 본다면 분명 이들을 지구 최고의 밴드이자 두 번 다시 그 어떤 밴드도 쉽사리 재현하기 힘든 커리어를 쌓았음은 물론 전설적인 록밴드 반열에 Led Zeppelin을 올려놓는데 그 누구도 의구심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 sea2138 글.

- 모터핑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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