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Motley Crue(머틀리 크루) - 뉴스/칼럼 - 모터핑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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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레전드] Motley Crue(머틀리 크루)
2년 전 조회 1,587 댓글 0

[Home sweet home]

 

1980년대에 LA메탈은 가장 인기 많고 1980년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음악 장르인데, LA메탈 흥행의 중심에는 머틀리 크루가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에 데뷔하여 LA메탈의 흥행을 주도한 머틀리 크루는 1991년 그들이 낸 베스트 앨범에 의해 LA메탈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우연을 낳게 되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반 NWOBHM 운동에 연이어 MTV가 개국하면서 이들의 인기는 상승세를 탔는데, 그들은 화장기 짙은 얼굴과 더불어 요란스레 치장한 가죽옷, 문신등을 한 채 공연을 하면서 유명세를 치뤘습니다.

당시 어느 밴드나 그랬겠지만 머틀리 크루는 이러한 메탈 밴드들의 치장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밴드 중 하나(선배 밴드 KISS의 영향도 있겠지만)로, LA메탈의 아이콘이자 1980년대 흥행 메탈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따라 다니는 여자, 마약, 술은 당시 일부 밴드들의 삶의 일부분이기도 했는데 머틀리 크루는 이러한 타락적인 모습을 지닌 LA밴드들의 정형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머틀리 크루는 <섹스, 드러그 & 록큰롤>을 그룹의 모토로 활동하는 소수 매니아적인 밴드이지만, 한편으론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앨범판매량 2500만장 이상, 전세계적으로는 5000만장이상의 앨범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대형 밴드이기도 합니다.

 

80년 초, LA에서 '런던'이라는 그룹의 멤버로 활동하던 니키 식스(본명:프랭크 칼튼 세라피노 Frank Calton Seraphino)는 '슈트 19'에서 드럼을 치던 토미 리를 만나 밴드를 구상하게 되었는데 'White Horse', 'Vendetta' 등의 많은 로컬밴드에서 활동한 바 있는 기타리스트 믹 마스(Mick Mars)가 합류했고 클럽가에서 만난 'Rock Candy'에서 활동했던 빈스 닐(Vince Neil)을 팀에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밴드가 출범하였습니다.

밴드의 이름인 머틀리 크루는 믹 마스의 별명이자 '애꾸눈 해적'을 일컫는 'Mottley Krue'에서 따왔으며 o와 u 위에 붙은 우물라우트('')는 단순히 '유럽적인 이미지가 좋아서'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80년대를 자신들의 역사로 만든 헤비메탈 그룹 머틀리

크루이다. 80년대 초반에 데뷔하여 90년대 얼터너티브

의해 록의 흐름이 바뀔때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그룹이다.

짙은 화장과 향락적인 가사, 각종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생활, 그리고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장르와 짙은 화장

못지 않은 그들의 파격적인 패션, 그들 자체로 LA

메탈을 정의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 하다.

 

80년대를 LA메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베스트 앨

범이 91년도에 발매되어 사실상 그들의

베스트 발매시점이 상업적인 LA메탈의

흥행의 마침표을 찍게 되는 우연을 낳게

된다.

사실상 여타 메탈 밴드들은 90년대 초중반

이후에 인기가 한창 사그라들 때 베스트

앨범이 나왔는데 이들은 한창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주위의 만류를 뿌

리치고 베스트 앨범을  내었던 것이다.

베스트 앨범 이후 있었던 얼터너티브의 폭

격에 그들도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헐리

우드 명예의 거리에 2301번 째로 입성하는

등 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의 한 자리에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음에 이들은 자신들의 주 활동지역이던 LA 클럽가를 돌며 연주를 했는데, 첫 연주 때부터 관객과 패싸움을 벌이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1981년 2월에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Stick To Your Guns]라는 싱글 1,000매를 제작해 배포하며 본격적인 클럽 순회 공연에 돌입했습니다. 거친 콘서트 매너와 키스를 방불케 하는 짙은 분장으로 어느 정도 유명해진 이들은 동년 6월에 자신들이 만든 레이블에서 데뷔앨범 [Too Fast for Love]를 발매했고, 이 앨범은 메탈 매니아와 평론가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수록곡 'Piece of Your Action', 'Live Wire'가 알려지고 과거에 발표했던 싱글 [Stick To Your Guns]와 [The Toast of The Town] 등도 덩달아 인기를 올리며 머틀리 크루의 화려한 돛을 올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메이저 레이블 일렉트라(Elektra)와의 계약 체결이라는 중요한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때부터 약물, 알콜중독에 쩔은 나날을 보내며, 데이비드 리 로스와 래트의 스티븐 퍼시, 로빙 크로스비들과 함께 어울리며 방탕한 파티를 즐겼다고 합니다. 

 

[Girls, Girls, Girls]

 

2집 [Shout at the Devil]은 1983년 10월에 발표됐는데, 이 앨범은 당시에만 3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이들을 일약 슈퍼스타로 발돋움시켰습니다.

이 앨범 발매 당시, 메이저 데뷔작 [Metal Health]로 빌보드 앨범차트를 석권한 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이 있었기에 머틀리 크루는 콰이엇라이엇, 트위스티드 시스터 등과 함께 초기 LA메탈을 흥행을 주도할 밴드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듬해에는 싱글 'Looks That Kill'이 차트 54위에 오르고 이어서 'Too Young To Fall In Love'가 90위에 랭크되었으며, 이 앨범 자체도 데뷔앨범에서 보여주던 퇴폐적인 가사와 간결하면서도 헤비한 사운드 등을 보여줌과 동시에, 머틀리 크루를 가볍다고 치부한 메탈팬들에게도 인상적인 사운드를 심어주어 머틀리 크루가 찍어낸 LA메탈의 초기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한편 비교적 준수한 외모를 지녔던 이들은 뮤직비디오와 헤비메탈을 적절하게 접목한 뮤비, 'Looks that kill', 중국식 액션이 들어간 'Too young to fall in love'로 MTV의 중요한 밴드로 성장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적이고 비윤리적인 무대 매너와 음악 성향은 평론가들의 표적으로 안성맞춤이었는데, 특히 앨범을 언급할 때 피할 수 없는 논점은 사타니즘이었습니다. 검은 바탕에 엷게 코팅된 역 펜타클(Pentacle, 원 안에 별이 그려진 것으로, 때때로 흑마술과 사타니즘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앨범 재킷과 악마(Devill)가 들어간 타이틀은 당연히 논란을 일으켰고 그룹의 리더 니키 식스는 인터뷰를 통해 '타이틀의 악마는 기성세대 등 젊은이의 꿈을 가로막는 존재다. 그들에게 소리치라(Shout)는 것이다.'며 일축했지만, 2001년 출판된 머틀리 크루의 자서전 <Dirt>에서 회고했듯 니키 식스는 당시 앨범에 적용할 멋진(니키식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마법서적을 탐독하던 중 잠시나마 사타니즘에 중독되기도 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주위사람들의 간곡한 설득과 자신의 아끼는 차가 반파되는 등 잇단 불길한 사고를 격은 후, 사타니즘의 위험성을 알게 됐고 '악마와 함께 소리쳐(Shout With The Devil)'로 생각하던 앨범 타이틀을 '악마에게 소리쳐(Shout At The Devil)'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앨범의 막대한 성공과 반대로 사생활 역시 문란하고 순탄치 않던 이들은 보컬리스트 빈스 닐이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옆에 타고 있던 동료 메탈 그룹 하노이 록스(Hanoi Rocks)의 드러머 래즐(Nicholas 'Razzle' Dingley)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는데, 이 사건은 밴드 자체의 각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밴드 사운드에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으로 1987년까지 재판이 계속되어 결국 100만 달러의 벌금과 19일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이러한 악재로 밴드가 가장 어려울 때 발표한 3집 [Theatre of Pain]은 발매 9주만에 플래티넘을 따내며 머틀리 크루의 인기를 재확인시켰으며 첫 싱글 'Smoking in The Boys Room'이 차트 16위까지 오르는 큰 히트를 기록했고 이어서 국내에서 유난히 인기 있었던 아름다운 발라드 곡이자 MTV가 방영한 첫 발라드 곡인 'Home Sweet Home'이 차트 89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무렵에 데뷔전부터 손대고 있던 약물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고, 특히 니키의 약물중독은 심각해서 헤로인,코카인 등에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Without you]

 

 

 3집 발표후 2년만인 1987년에 발매된 4집 [Girls, Girls, Girls]가 발매되며 전미 앨범 챠트에서 2위에 오랐고 타이틀곡이자 첫 싱글인 'Girls, Girls, Girls'가 MTV에서 폭발적 인기를 모으며 챠트 12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뮤직 비디오 덕을 많이 본 'You're All I Need'가 83위에 올랐는데 이 앨범에서는 멤버들의 짙은 화장을 지우고 맨 얼굴로 등장한 대신 문신을 몸에 새겨넣으며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쾌락적이고 선정적인 사운드메이킹에는 변함에 없었는데 덕분에(?) 전작보다 나아진 음악 성숙도만큼이나 앨범도 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들은 밴드 생활 내내 악동 이미지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매스컴을 타면 탈수록 인기는 더욱 높아졌는데 앨범과 공연으로 벌어들인 엄청난 부와 주위에 끊이지 않는 여성 팬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부추겼습니다.

과음, 난잡한 성생활, 각종 마약 등으로 무너져가던 이들은 결국 리더 니키 식스가 마약 중독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되는(성급한 일부 매체에서는 심지어 사망보도까지 내보냈다.)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병원에 실려가던 상황을 니키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느낌었다는 식으로 술회하였는데, 사고뭉치인 니키는 다시 수많은 취재진을 뚫고 병원을 빠져나와 자기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화의 부재중 메시지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화가 다시 왔을 때 자신이 녹음한 부재중 메시지를 들으며 헤로인을 맞으며 다시 기절했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들의 방탕함은 82년 앨범 'Shout At The Devil' 발매직후 한 인터뷰에서 '빨리 살고, 빨리 죽자(Live Fast, Die Fast)'라는 표어를 외치며 "40세가 되면 보통 사람처럼 살겠다. 단,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이라고 큰 소리쳤던 머틀리 크루였기에 이들의 이러한 악재는 예고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니키 식스의 실신 사건 이후 "니키 대신 베이스를 쳤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나타나(니키가 두사람 이었단 사건) 재판까지 가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머틀리 크루는 L.A. 메탈의 상징이면서 그 흐름의 중심에

있던 밴드이다. 이들의 도저히 대책이 안서는 쾌락주의와

이유없는 반항은 당시 거품에 빠져있어 자만에 취해있던

80년대의 미국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이다.

웃고 떠들고 마음에 안들면 그냥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어쩌면 젊은 혈기가 철철 흐르는 것이 이들이고

 

이들의 초기음악에 그것들이 잘 녹아나 있는데

'마음껏 놀고 먹고 즐길 것이다.

단 40세까지만...' 이라고 할만큼 이들이 빠져

있던 쾌락과 방탕스런 생활은 경쾌하고 직선적인

리프와 8비트의 전형적인 리듬으로 표현되었고

그것이 이 시대의 락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이후 이들은 [Dr. Feelgood]을 통해 이전보다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지금 듣기에

이들의 음악이 다소 촌스러울지 몰라도 지구상의

어떤 음악보다 단순명료하고 즐거움으로 충만되어

과거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머틀리 크루를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머틀리 크루와 건즈 사이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건즈 앤 로지스의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radlin)이 빈스의 애인을 건드려서 빈스가 이지를 구타했는데(?), 이에 격분한 액슬 로즈(Axl Rose)가 결투를 신청, 결투장소인 LA의 한 레코드점으로 빈스를 비롯한 머틀리 크루 멤버들이 달려나갔으나 액슬이 총기를 소지한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오는걸 발견한 이들은 재빨리 그 곳을 벗어나왔다고 합니다.

 

이후 1989년 8월 본 조비(Bon Jovi), 신데렐라(Cinderella),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스콜피언스(Scorpions), 스키드 로우(Skid Row) 등이 참가한 "모스크바 평화 음악 축제(Moscow Music Peace Festival)" 에 참여한 머틀리 크루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언제나 사고를 몰고 다니는 니키 식스가 'Kill Bon Jovi'라고 쓴 베이스를 들고 무대에 올라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당시 본 조비는 엄청난 거물로 성장한지라, 결국 머틀리 크루는 이 공연이 끝난 즉시 본 조비와 함께 소속돼 있던 매니지먼트사 맥기(McGhee)와 결별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빈스 닐의 교통 사고 후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본 조비, 건즈 앤 로지즈, 포이즌, 데프 레파드 같은 머틀리 크루를 위협하고 넘어설 흥행카드가 하나 둘 등장하면서 이들도 위압감에 시달렸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전원이 재활원 치료를 통해 마약은 물론 술까지 끊고, 초심으로 돌아가 새 앨범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2~4집까지 히트 퍼레이드의 주역이었던 톰 워먼(Tom Werman)을 과감히 떠나보내고, 신흥 메탈그룹 킹덤 컴(Kingdom Come)의 데뷔 앨범으로 능력이 알려지기 시작한 밥 록(Bob Rock)을 초빙하였는데 까다로운 밥 록의 요구에 따라 치밀한 연주를 담아내었고 나이트 레인저(Night Ranger)의 잭 블레이즈(Jack Blaze)와 캐나다의 록 스타 브라이언 아담스(Brian Adams), LA메탈 신의 뉴 히어로 스키드 로우(Skid Row) 그리고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스티븐 타일러(Steven Taylor) 등이 우정 출연한 풍성한 앨범이 제작되었는데, 그것이 1989년 공개된 [Dr. Feelgood]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700만장이라는 밴드 사상 최고의 판매를 기록하고 앨범도 챠트 1위에 올라 머틀리 크루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앨범 내 많은 곡들이 사랑받았는데 타이틀 곡인 'Dr.feelgood'이 챠트 6위에 오른데 이어, 레이싱 카를 타고 달리듯 긴박하게 몰아치는 질주감이 일품인 'Kickstart my heart'이 27위에 'Same ol' situation'이 78위에 랭크되었습니다.

또한 머틀리 크루의 또다른 발라드곡 'Without you'이 챠트 8위에 올랐으며 'Don't go away mad (just go away)'(19위)등도 챠트에 오르는 등 머틀리 크루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자 대중적이고 팝적인 감각이 묻어난 메탈이 정점을 찍던 그 시점에 만들어낸, 그들의 노력이 집약된 앨범으로 머틀리 크루는 이 작품으로 1989년 MTV 뮤직 비디오 시상식에서 '헤비 메탈'상을, 1991년 아메리칸 음악 시상식에서는 '인기 앨범'상과 '헤비메탈/하드 록' 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어쩌면 그럭저럭 흥행가도를 달린 밴드에게 이 앨범의 성공은 그들의 커리어에 있어 최고 전성기의 정점을 찍게 하였고 후발주자로서 엄청난 판매량을 올렸던 건즈앤 로지즈나 포이즌, 본 조비에게도 뒤쳐지지 않은 또 하나의 앨범을 만들어냄으로써 사실상 이 앨범으로 머틀리 크루가 LA메탈 역사에 있어 그 누구도 근접하지 못할 금자탑을 쌓게 한 앨범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Dr. Feelgood]

 

 

1991년8월, 머틀리 크루는 <몬스터즈 오브 락>에 출연하였습니다.  헤드 라이너의 AC/DC, 그 해에 [Metallica]를 발표한 메탈리카의 앞순서의 연주였습니다.

5집의 큰 성공으로 너무나도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이들은 1991년 11월에 'Primal Scream'을 비롯한 3곡의 신곡과 함께 자신들의 10년 활동을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 [Decade Of Decadance]을 발표한였습니다.

타미 볼린의 곡 'Teaser'와 Advanture Of Ford Fairlane 이란 영화에 수록되었던 'Rock N' Roll Junkie', 그리고 대중적 느낌의 'Angela', 섹스 피스톨즈의 고전을 커버한 'Anarchy In The U.K' 등이 수록되었으며, 또다른 신곡 'Primal Scream'이 싱글커트된 가운데, 머틀리 크루의 10년사를 잘 정리한 앨범으로 그들의 히트곡을 골고루 담아놓은 영양가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베스트 앨범을 내도 될 만큼 재료가 모아져 베스트 앨범을 내게 되었다." 던 그들의 입장과 다르게 그룹 내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베스트 앨범 이후 빈스 닐이 밴드 내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당하게 되었습니다.

 

머틀리 크루는 보컬에 스크림(Scream) 출신의 존 코라비(John Corabi)를 맞아들였습니다. 갑작스런 해고에 분개하던 빈스 닐은 마음을 정리하고 93년에 자신의 솔로앨범 [Exposed]를 발표했는데, 댐 양키즈(Damn Yankees)의 타미 쇼(Tommy Shaw)와 잭 블레이즈(Jack Blades)가 빈스를 도와 작곡에 참여했으며, 빌리 아이돌(Billy Idol) 출신의 명기타리스트 스티브 스티븐스(Steve Stevens)도 찬조해 현란한 기타솜씨를 뽐냈으며 앨범도 어느정도 인기를 끌며 재기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머틀리 크루도 이에 질세라 94년 4월에 셀프타이틀 앨범 [Motley Crue]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헤비메탈이 메인 록의 조류에서 밀려나고 얼터너티브가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았던 시점이라 앨범 [Motley Crue]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전 80년대의 머틀리 크루 사운드는 아니었지만 묵직한 록을 구사한 이들은 앨범 자체는 나쁘지도 않았었고 더러는 팬들에게 [Dr. Feelgood]을 넘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았으나 '보컬이 밴드와 안맞는다.', '이 앨범은 1980년대에 발매되었어야 했다.' 등등(?)의 아이러니한 이유로 팬들의 지지는 얻어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97년에 빈스를 다시 불러들여 8집 [Generation Swine]을 내놓았습니다. 다시 뭉쳐 돌아온 머틀리 크루에 대한 팬들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8집이 발표하자마자 앨범차트에 4위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앨범은 뜻밖에도 많은 팬들의 기대와 달리 90년대식 얼터너티브를 수용하고 있는 문제작이었으며 빈스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실망감을 가져단 준 것은 물론 시기적으로 얼터너티브 역시 최정점을 찍고 조금씩 하향세를 꺽던 시기라 이들의 앨범은 더욱 환영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 듯 싶습니다.

당시 밴 헤이런이 그러했듯 이들 역시 초기의 뜨거운 반응 빼고는 곧 챠트에서 사라졌고 앨범도 골드 정도에 그쳤습니다.

 

1998년부터 일렉트라 레코드를 떠나 자신들만의 독자 레이블 머틀리 레코드를 설립한 이들은 11월에 2번째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를 발매하여 전미 차트 20위에 올랐으나, 이미 1991년에 [Decade Of Decadance]라는 앨범이 발매되었던 터라 새로울 건 없었습니다.

 

1999년에 이전해의 와이프였던 여배우 파멜라 앤더슨을 폭행한 혐의로 투옥된 토미가 밴드에서 탈퇴하여 12월에 [Method Of Mayhem]이라는 힙합색깔이 강한 솔로앨범을 발매했고, 2000년 토미의 후임에 전 오지 오스본 밴드에서 몸담았던 랜디 카스틸로를 영입, 7월에 8번 째 앨범 [New Tatoo] 를 발표하지만 전미차트 41위밖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 단신들...

* 2001년 밴드의 자서전 'The Dirt' 발표되었으나, 2002년에 랜디 카스틸로가 암에 의해 사망하였습니다.

 

* 2003년 니키는 전 L.A.건스의 트레이시 건스와 함께 Brides Of Destruction을 결성하여, 3월에 첫앨범 [Here Come The Brides] 발표했지만 니키는 투어가 끝난 후 탈퇴하였고, 2004년에 토미가 복귀, 2005년 2월에 3번째격인 베스트 앨범 [Red White & Crue] 를 발매하며 전미차트 6위에 올랐습니다.

2006년 4월, 라이브 앨범 [Carnival Of Sins]를 발매. 9월엔 에어로스미스와 "루트 오브 이블 투어" 라는 이름으로 전미각지를 순회하였습니다.

* 2007년 니키가 1986년부터 1987년까지의 약물 중독이였던 자기자신의 일기 'The Heroin Diaries : A Year In The Life Of A Shatterd Rock Star' 를 발표하였고, 동시에 그 사운드 트랙 'The Heroin Diaries Soundtrack' 을 Sixx:A.M.라는 밴드를 결성해 발매하였습니다.

* 2008년 6월 8년만에 9번 째 앨범 [Saints Of Los Angeles] 을 발매하여 원년 멤버로서는 1997년 발표한 [Generation Swine]이래로, 실로 11년만에 내놓은 이 앨범은 전미차트 최고 4위에 랭크되었습니다.

 

- sea2138 글.

- 모터핑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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