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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Journey - 뉴스/칼럼 - 모터핑거 1973년에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에서 망년회를 기념 - 일렉기타 통기타 베이스 강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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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조회 1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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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에서 망년회를 기념하는 음악 친구들끼리의 모임이 계기가 되어 1974년 그룹 Journey가 조직되었는데 이들의 첫 무대는 하와이 현지의 “하와이 선 훼스티발” 공연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용기를 얻어 계속 그룹활동을 하였습니다.

 

Separate Ways

 

처음 밴드 결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은 그룹 산타나의 로드 매니저였던 월터 "허비" 허버트(Walter "Herbie" Herbert)였습니다. 이후 그는 15세 때 산타나에 스카우트된 천재 기타리스트 닐 숀(1954년 2월 27일 캘리포니아주 산 마테오 생)과 프루미너스 밴더스내치(Fruminous Bandersnatch)를 거쳐 스티브 밀러 밴드(Steve Miller Band)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로스 밸로리(Ross Valory, 1949년 2월 2일 샌프란시스코 생), 그리고 튜브스(Tubes)의 드러머였던 프레리 프린스(Prairie Prince)와 역시 프루미너스 밴더스내치 출신의 기타리스트 조지 티크너(George Tickner)의 라인업으로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m Section)이라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산타나 탈퇴 후 시애틀에서 아버지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키보드 주자 그렉 롤리(1947년 6월 17일 시애틀 생)가 가입하였습니다. 이들은 지역에서 연주를 하거나 유명 밴드들의 오프닝을 서면서 초반에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록 전문 FM 라디오 방송국인 KSAN에서 실시한 밴드 이름 공모를 통해 얻게 된 이름이 저니(Journey)였고 이들의 라이브 데뷔는 1973년 12월 31일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 볼룸(Winterland Ballroom)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니(Journey)의 인기가 가능한 원동력 중

하나는 알마도 스티브 페리가 팀의 보컬로

가입한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결과적으로 스티브 페리가 가입하기 전과

가입한 후로 저니의 시기를 구분할 수도
있겠다.

가입전에는 연주력 지향의 하드록을 들려주

려고 했다면 가입이후에는 국내에서도 매우

친숙한 록발라드나 팝록계열의 밴드라는 인상

을 심어주었다.

하여간 스티브 페리의 호소력 짙은 열정적인

보컬과 닐 숀의 격정적인 기타연주는 조합이

잘 맞았는데 특히 키보디스트 조나단 케인의

가입은 저니라는 배에 순풍을 달아놓은 듯

했다. 이들 저니는 그동안 6연속 플래티넘을

획득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하드록그룹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일부 록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70년대의 저니를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다고

한다.

 

듬해인 74년 초, 드러머가 탈퇴하자 이들은 오디션을 통하여 제프 벡(Jeff Beck), 프랭크 자파(Frank Zappa) 등과 활동했던 실력있는 드러머 에인슬리 던바(Aynsley Dunbar, 1946년 1월 10일 영국 리버풀 생)를 드러머로 낙점하였습니다.

 

이후 꾸준한 연주 활동을 계속하던 밴드는 같은 해 11월 [CBS]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75년 4월에 발표된 데뷔작 [Journey]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앨범 작업 후 기타리스트 조지 티크너가 밴드를 떠났습니다. 이유는 데뷔 첫 해부터 거의 공연 여행으로 보냈는데 조지 티크너는 거기에 지쳐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76년에 두 번째 앨범 [Look Into The Future]와 77년에 세 번째 앨범 [Next]가 나왔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니는 역량있는 보컬의 필요성을 느꼈고 로버트 플라이시만(Robert Fleischmann)이 잠시 리드 싱어로 머물렀지만 1977년 10월, 밴드의 프런트맨으로 에일리언 프로젝트(Alien Project)라는 무명그룹에서 활동했던 스티브 페리(1953년 1월 22일 캘리포니아주 핸포드 생)가 보컬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페리가 합류함으로써 Emerson, Lake & Palmer의 미국순회공연에 저니가 오프닝을 섰고 그들의 4번째 앨범부터 그룹의 마스크인 Steve Perry가 참여하여 1978년에 [Infinity]가 나왔습니다.

 

저니는 밴드의 시기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스티브 페리가 합류하기 전과 합류한 이후일 것입니다. 스티브 페리가 합류하기 전에는 앨범판매에도 약진을 이루지 못했고 별 특징없는 보컬로 인해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멤버들의 이탈은 저니를 어렵게 하였는데 스티브 페리가 가입되면서 저니의 본격적 여행이 시작됩니다.

 

Open Arms (Live in Houston)

 

78년 4월에 다소 팝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4번째 앨범인 [Infinnity]가 북미와 유럽의 171개 도시를 돌며 행한 대규모 투어에 힘입어 밀리언셀러로 기록되었고 ‘Wheels In The Sky’가 싱글커트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머 에인슬리 던바가 음악적인 견해차로 인해 팀을 떠났다가 제퍼슨 스타쉽으로 옮겼고 그 빈자리에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1954년 8월 21일 로스앤젤레스 생)가 자리하였습니다.

 

이후 이들은 버드와이저의 광고에 출연하며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79년에 다섯 번째 앨범 [Evolution]가 발매되어 여기에서 싱글 커트된 'Just The Same Way'와 'Lovin', 'touchin', 'Squeezin' 가 인기를 얻었으며 저니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섯 번째 앨범 [Departure]('80) 역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싱글 커트된 곡 'Stay Awhile', 'Anyway You Want It'이 인기를 얻으며 정상의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1981년 초에는 더블 라이브 앨범 [Captured]가 발매되어 여기서 싱글 커트한 'The Party's Over'는 챠트 상위에 올랐으며, 이 라이브 앨범은 Journey의 수준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연이은 투어에 지친 키보디스트 그렉 롤리가 탈퇴의 뜻을 밝혔고 저니의 오프닝 밴드였던 베이비스(Babys) 출신의 키보드 주자인 조나단 케인(1950년 2월 26일 시카고 생)이 가입함으로써 저니는 더 비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에 81년에는 [Escape]가 나와 그 해 9월 빌보드 챠트 정상을 점령하고 'Open Arms'(2위) 'Don't Stop Believin''(9위) 'Who's Crying Now'(4위), 'Still They Ride'(19위) 등이 히트하며 9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이 앨범은 그후 챠트 안에 2년여 동안 머무르며 그 성공을 과시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앨범 [Frontiers] 앨범은 우리나라에서 개인적으로 코믹하고 80년대스러운 뮤비 분위기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Separate ways'가 8위에 오른 것을 비롯, 'Open Arms'와 더불어 널리 사랑받는 발라드 'Faithfully'가 12위, 'After the Fall'과 'Send Her My Love'가 각각 40위, 23위에 자리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보여주며 600만장을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Don't Stop Believin' (Live in Houston)

 

83년에 나온 [Frontiers]는 그들의 성공을 이어갔으나 이즈음 그룹 멤버들의 솔로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이미 닐 숀은 키보드 주자 얀 해머(Jan Hammer)와 함께 작업한 [Untold Passion]('81), [Here To Stay]('83) 등의 솔로 앨범들을 발표한 상태였고 84년 5월에는 스티브 페리의 솔로 데뷔작 [Street Talk]가 발표되어 인기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로스 밸로리와 스티브 스미스가 밴드를 떠나면서 결국 저니는 스티브 페리와 닐 숀, 그리고 조나단 케인의 트리오 형태가 되었고 이즈음 저니의 많은 팬들 중에는 가난했던 시절의 그들 사운드를 바라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스티브 페리는 85년, 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에 참가하였고 기타리스트인 닐숀도 디오가 프로젝트한 HEAR 'N' AID에 참여하며 그룹 Journey는 팝계과 메틀계가 구상한 프로젝트에 모두 참가한 그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85년 2월에 영화 [Vision Quest]의 사운드트랙 'Only The Young'가 발매되었습니다. 트리오의 형태로 발표한 앨범 [Raised On Radio]('86)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 취약한 사운드를 담고 있었고 결국 1986년 <Raised On Radio>를 마지막으로 해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닐 숀과 조나단 케인은 베이비스 출신의 존 웨이트(John Waite)와 1987년 배드 잉글리시(Bad English)를 결성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스티브 스미스는 자신의 그룹 바이탈 인포메이션(Vital Information)을 결성하여 활동하다 이후 '91년 그렉 롤리, 로스 밸로리의 그룹 스톰(Storm)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페리 역시 솔로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닐 숀과 조나단 케인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배드잉글리쉬로 'When I See You Smile'과

'Price Of Love'를 남기며 1980년대 후반

하드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2번째 앨범 [Backlash]는 괜찮은 내용

을 담고 있었음에도 킬링트랙의 부재와 당시

음악흐름에 밀려 배드 잉글리쉬는 사라졌고

그들은 다시 하드라인Hardline이라는 주목할

밴드를 남겼다.

저니를 떠난 그렉 롤리와 로스 발로리가

의기투합한 그룹 The Storm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운드를 담고 있는지

자세히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현재까지도

AOR팬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앨범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하고 싶다.

 

닐 숀은 배드 잉글리시 이후 그룹의 드러머였던 딘 카스트로노보(Deen Castronovo)와 하드라인(Hardline)을 결성하여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페리와 닐 숀, 조나단 케인, 로스 밸로리, 스티브 스미스는 1996년, 다시 모여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 [Trial By Fire]가 발표되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작품 이후 (건강을 이유로)스티브 페리와 스티브 스미스가 밴드를 탈퇴함으로써 저니의 생명도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스티브 페리와 흡사한 음색을 지닌 보컬리스트 스티브 오거리(Steve Augeri)가 프런트맨으로 자리하고 딘 카스트로노보가 가입하며 밴드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98년 블록버스터 영화 '아마게돈(Armageddon)'의 사운드트랙에 'Remember Me'를 수록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열 한 번째 스튜디오 앨범 [Arrival]을 발표하고 56개 도시를 거친 대규모 투어를 성공시키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2002년 여름 'Under The Radar Tour'로 이름 붙인 투어로 미국 팬들의 열광을 얻어낸 저니는 같은 해 말 EP [Red 13]을 발표하여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 sea2138 글.

- 모터핑거 엮음.

 

* 번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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