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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조회 2,08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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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ill rock you]

 

의 역사는 고교 재학시절로 올라가는데 당시 Brian May는 '1984'라는 밴드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68년 Imperial College의 학생이던 Brian May와 Ealing College of art에 다니던 Tim Staffell은 band를 결성하기로 결심하였고 학교게시판에 공고를 내고 오디션을 통해 드러머인 Roger Taylor을 가입시켰습니다.

 

이리하여 퀸의 모체가 되는 Smile이라는 밴드가 결성되었고 밴드는 1969년 Mercury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입에 도움을 주었던 Freddie Bulsara는 밴드활동에 간혹 동참하기도 하고 그들의 팬이 되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코드사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아 그룹 Smile은 1970년에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Tim은 그 후 Humpy Bong이라는 band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보컬자리에는 이전부터 Smlie의 멤버들과 친했던 Freddie Bulsara가 자신이 속해있던 밴드 'Wreckage'에서 나와 합류해 로저, 브라이언과 함께 새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Freddie Bulsara는 자신의 이름을 머큐리(Mercury)로 정하고 밴드의 이름을 퀸(Queen)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후 3명의 베이스주자가 밴드를 거쳐갔으나 정식 멤버가 되지 못하였고 1971년 2월, John Deacon이 퀸의 베이스주자로 합류하였습니다.

 

밴드 Queen은 꾸준한 연습에 매진하였으며 Imperial College에서 작은 연주회도 벌였습니다.

그러던 사이 De Lane Lea라는 studio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들의 데모 테이프는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데모 앨범을 가지고 돌아다닌 끝에 Trident사와 계약을 맺고 낮은 수당을 받으며 일과 외 시간을 활용하여 그들의 데뷔앨범을 작업하였습니다.

 

그래서 1973년 Trident와 EMI가 Queen과의 녹음계약을 맺었고 그해 7월 그들의 첫번째 앨범 'QUEEN'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당시 엔지니언인 로이 토마스 베이커와 제작자인 존 앤소니의 협조로 레코딩된 것이었으며 데뷔앨범은 큰 관심을 얻지 못했고 첫 싱글 ‘Keep Yourself Alive’은 차트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으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한편 Queen은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의 서포트밴드 자격으로 무대에 서며 리즈에서 시작된 퀸의 연주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그룹의 가장 큰 장기는 록에다가

오페라의 형식과 창법을 도입했다는

점인데 그룹 Queen은 처음에는 거친

하드록밴드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들의 공격적인 록사운드는 75년의 [A Night At The Opera]으로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독특한 오페라식의 록사운드을 펼쳐보였으며 1979년작 [Jazz]에 이르기까지 "No Synthesizer!"라는 타이틀을 달면서 자신들의 사운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몸소 보여주기도 하였고 1980년대 이후에는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도입하며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러한 모습이 평단으로부터는 ‘상업적 밴드’라는 다소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쳐졌지만 그러한 음악적 시도가 적어도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1974년 3월에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인 [QUEEN II]가 발표되었습니다.

음반커버 인쇄실수로 발매가 늦어진 이 앨범은 브리티쉬 챠트 1위에 오른 싱글 ‘Seven Seas Of Rhye'를 탄생시킴으로써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밴드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첫 영국투어를 감행하였으며 Mott The Hoople의 서포트밴드자격으로 전미순회공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해 5월 tour 도중 Brian이 간염에 걸려 나머지 공연 일정을 취소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노력으로 그들은 많은 라이브를 갖는 그룹으로 이해되었습니다.

 

3번째 앨범은 Roy Thomas Baker의 도움과 더불어 Brian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타파트를 녹음하는 성의를 발휘하며 제작된 앨범으로 앨범명은 [Sheer Heart Attack]으로 1975년에 발매된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앨범 챠트 2위에 올라 미국청중들도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앨범 수록곡 ‘Killer Queen’은 싱글챠트 12위에 올라 그룹 최초로 미국에서 히트한 곡이 되었으며 앨범은 북미와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전미 투어를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인기가 상당하여서 밴드 Queen은 하루에 2회 공연을 하기도 하였으며 그럼에도 매진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때론 Freddie Mercury의 목문제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였고 보컬 프레디는 의사의 만류에도 노래를 부르려 했습니다.

 

반면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속사인 Trident는 너무 적은 월급을 제공하였는데, 그들에게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한 Trident를 떠나 자신들만의 소속사(Queen Production Ltd)를 법률 관련 사무가 Jim Beach의 도움으로 성립하였습니다.

덕분에 Jim Beach는 퀸의 법률 관련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Bohemian Rhapsody - Live]

 

1975년 4월에는 그들의 첫 캐나다공연을 밴드 Kansas와 함께 하였으며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였는데 공항에 3천여명의 팬이 몰려들어 그들 스스로도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1975년 5월 Freddie는 'KILLER QUEEN'으로 Songwriters Guild가 주는 Ivor Novello Award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6월부터 새앨범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Queen은 9월에 새로운 manager - John Reid와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해 11월 오페라를 몇 분의 노래에 축약시켜 놓은 듯한 자신들의 야심적 앨범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앨범에 수록된 곡이 ‘Bohemian Rhapsody’였는데 곡이 비교적 길어 많은 사람들이 히트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고 합니다.

반면 보컬 프레디는 친구이자 London DJ인 Kenny Everett에게 ‘Bohemian Rhapsody’를 녹음하여 주며 ‘개인적인 선물이니 방송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지만 그 노래는 이틀동안 14번이나 편집을 하지 않은 채 전파를 통해 흘러나왔고 다른 방송사에서도 ‘Bohemian Rhapsody를 틀었습니다.

 

이 곡은 엄청난 히트를 치며 9주 동안 싱글 챠트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앨범은 그들에게 첫번째 플래티넘을 안겨주었으며 브라이언 메이가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하여 평론가들에게서 ’재즈밴드 효과를 내는 매카트니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앨범내에서는 존 디콘이 쓴 ‘You’re my best friend’(영국 7위, 미국 16위)가 히트했고 국내에서는 프레디 머큐리가 쓴 ‘Love of my life’가 폭발적으로 애청되었는데 이곡은 ‘Bohemian rhapsody’가 국내에서 공륜으로부터 허무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라이센스되지 못한 것도 작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라이언 메이 작품인 ‘39’도 줄기차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편 ‘Bohemian Rhapsody’를 바탕으로 비디오를 찍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프레디는 두 번째 앨범의 Queen Logo를 디자인했는데 [A NIGHT AT THE OPERA]의 앨범 cover를 그렸다고 합니다.

여기에 그려진 퀸의 문장은 band member들의 별자리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1976년 1월, 프레디는 ‘Bohemian Rhapsody’로 아이버 노벨로(Ivor Novello)상을 ‘Killer Queen’에 이어 다시 한번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1월부터 3번째 전미순회공연이 3월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일본공연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영국에 돌아왔을 때에도 그들이 발매한 4장의 앨범은 여전히 챠트 상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기현상을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던 차에 Queen은 무료 공연을 준비하였고 장소는 런던의 유명한 하이드파크였습니다. 그 공연은 현재까지도 하이드파크에서 열렸던 최다관중이 동원된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부드럽고 유려한 팝적인 음색과 힘찬 고음, 록적인 강력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다른 연주파트를 압도할만한 뛰어난 성량을 가졌던 Freddie Mercury는 MTV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2위에 랭크되기도 하였고 롤링스톤즈가 선정한 100대 기타리스트 39위로 Brian May가 선정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들 그룹에서 아무래도 보컬인  Freddie Mercury가 가장 주목받긴 하지만 그룹 Queen은 그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멤버 모두가 보컬 및 코러스를 훌륭하게 해내어 록 밴드들의 보컬 하모니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들의 뛰어난 보컬하모니는 그들간의 끈끈한 팀웍인데 그러한 팀웍은 그룹이 결성되고 1991년 보컬 Freddie Mercury가 사망할 때까지 단 한차례의 멤버 교체가 없는 보기드문 이력을 가진 밴드로 기억된다.

 또한 퀸은 멤버 모두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밴드라 멤버 모두가 작곡에 참여하였으며 밴드멤버가 작곡한 곡들이 챠트10위(비틀즈도 있지 않나 싶지만)에 랭크시킨 유일한 그룹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Queen은 멤버 모두가 대중적인 음악감각에 있어서 상당한 감각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1976년 12월에 그들의 다섯 번째 앨범 [A DAY AT THE RACES]으로 이 앨범은 퀸 멤버들이 직접 제작한 최초의 앨범이었습니다.

그들은 앨범 홍보를 위해 특별 경마를 열기도 하였으며 이 앨범은 전작의 히트에 힘입어 5일전에 약50만장의 예약을 받으며 EMI 사상 가장 많은 예약을 받은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싱글은 ‘Somebody to love’가 영국에서 2위, 미국에서 13위를 기록하고, ‘Tie your mother down’(영국 31위, 미국 49위) 그리고 첫 EP의 리드트랙이었던 ‘An old-fashioned lover boy’(영국 17위) 등이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Millionaire waltz’, ‘You take my breath away’, ‘You and I’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7년 퀸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연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로저는 솔로 싱글을 발매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팬클럽을 자신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렇게 찍은 뮤직비디오가 'We Are The Champion'이었습니다.

작업이 끝난 이후에도 퀸은 자신들을 위해 뮤비를 찍어준 팬들을 위해 무대에 남아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즈음에 ’Bohemian Rhapsody’로 52년부터 77년까지 발표된 영국 싱글 가운데 최우수 싱글에 주어지는 브리태니어 상(Britannia Award)을 ‘A whiter shade of pale’의 프로콜 하럼(Procol Harum)과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1978년 10월 28일 여섯 번 째 앨범 [New Of The World]가 발매되었는데 Cover그림은 Roger가 알고있는 science artist, Kelly Freas가 그렸다고 합니다.

싱글커트된 'We Are Champions'가 대히트(영국2위, 미국4위, 프랑스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에서는 ‘We will rock you’와 함께 더블 A면 싱글로 발표되어 밴드 최초의 플래티넘(100만장판매) 영광을 안으며 4위에 올랐습니다.

 

We will rock you’ 역시 히트하였으며 국내에서도 ‘Spread your wings’, ‘All dead all dead’, ‘Who needs you’, ‘My melancholy blues’등이 애청되며 국내에서의 퀸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1978년 2월, 그들은 자신들의 management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하며 존 레이드와의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1978년 4월에 유럽투어를 진행하였으며 그 해 여름부터 진행된 앨범작업은 처음으로 영국 밖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퀸은 새로운 single 'Bicycle Race'의 홍보차 Wimbledon Stadium을 빌리고 50여명의 나체의 여성들이 자전거에 타고 경주를 벌이게끔 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나체의 여성을 싱글의 커버로 삼았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심의 때문에 팬티를 그려넣어야 했습니다.

 

11월 10일 Queen의 7번째 앨범 'JAZZ'가 발매되었습니다. 앨범에는 나체 자전거 경주 포스터가 들어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이것을 금지 시켰기 때문에 신청서를 대신 넣어 우편으로 포스터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앨범에선 더블 A 싱글 ‘Bicycle race/ Fat bottomed girls’(영국 11위, 미국 24위)와 지금도 라디오전파를 수놓는 ‘Don’t stop me’(영국 9위, 미국 86위)가 크게 히트했습니다.

 

1979년 6월 마침내 첫 라이브 앨범 <Live Killers>가 요구에 의해 발매되었는데 유일한 싱글인 Love Of My Life는 약 1년 동안 아르헨티나 차트에 머무르는 저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본 투어와 영국 투어를 끝낸 그들은 그 해 크리스마스 다음날 밤 캄보디아를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하였습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1980년 6월 퀸 최초로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The Game>이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퀸의 경력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한 음반으로 평가받는데, 우선 전작인 [Jazz]까지 음반 속지에 삽입되던 "No Synthesizer!" 문구가 사라지며 본격적인 그들의 상업적 음악의 시도를 알렸습니다.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는 그룹에게 최초로 미국 빌보드싱글 챠트1위라는 영광을 가져다 주었으며, 2번째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도 챠트1위에 올랐습니다.

이곡은 미국에서 rock, soul, disco 등 모든 chart에서 top을 기록하는 'crossover'히트를 했으며, Band는 best band부문에서 'Dick Clarke'상을 받았고, 'Top Crossover single'로 Top Billboard상을 받았으며 독일과 캐나다의 'Juno'상을 비롯한 여러상의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SF영화인 ‘Flash Gordon'의 사운드 트랙 앨범을 제작해 매스컴과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띤 앨범이란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퀸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밴드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앨범 [The Game]의 성공으로 최고밴드대열 중에서 최초로 남미투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남미의 stadium을 차지한 첫번째 rock band가 되었습니다.

남미투어 중에는 아르헨티나 월드컵 축구경기장에서 공연을 하여 5번을 매진시켰으며, Sao Paulo에 있는 Morumbi Stadium에서 공연시 첫날밤에 131,000명의 사람이 모였는데 이것은 rock and roll 역사상 단일 band공연으로 유료입장객수의 새로운 기록이었으며, Morumbi Stadium에서 이틀밤동안 251,000명의 사람들이 Queen 공연을 보며 앞으로 있을 수많은 밴드들의 남미투어의 물꼬를 터주었습니다.

투어 동안 퀸의 모든 앨범이 아르헨티나 챠트 내에서 들어있는 기현상까지 보였습니다.

그 당시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가 그의 첫 솔로 앨범 [Fun In Space]를 내놓았으나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1981년 10월 퀸은 데이빗 보위와의 합작인 <Hot Space>에 수록될 'Under Pressure'를 싱글로 발매하여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의 공연 실황인 <We Will Rock You>라는 비디오와 1981년까지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 [Greatest Hits]를 발매하였습니다.

[Greatest Hits]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에 장기간 머물며 판매량 540만 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Under Pressure'를 커팅하여 싱글로 내놓아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작곡, 연주, 제작한 곡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2년 봄이 되어 새로운 앨범 [Hot Space]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은 퀸 특유의 오페라적 분위기보다 댄스 취향의 록과 R&B 요소가 다분한 것으로 이 앨범보다 먼저 발표된 싱글 ’Body Language'가 11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앨범은 실패하였고 평단으로부터도 ‘싸구려 디스코 음반’으로 평가받았으며 밴드 활동도 중단되며 해체설도 나돌았습니다.

반면 1982년 12월 Queen은 영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받는 Group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I want to break free]

 

1984년 2월, 13번째 앨범인 <The Works>를 발매하였고 첫 싱글 ‘Radio ga ga’는 19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 2위, 미국에서 16를 기록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앨범 챠트에서 9개월 동안 머무르며 전작 [Hot Space]의 부진을 만회하였습니다.

 

'We Are The Champion'이 그러했던 것처럼 ‘Radio ga ga’도 그들의 팬클럽 회원들이 참여하였고 여기서 박수 코러스는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싱글 ‘I want to break free’의 뮤직 비디오는 영국방송의 인기있는 뮤지컬 'Coranation Street'의 등장인물로 분장하고 나왔는데 맴버 모두가 여장을 하고 나온 뮤비였습니다.

멤버들이 도덕적이고 심각한 것에 대해 싫증나서 때로는 재밌게 그리고 그들 자신이 우습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찍었다고 하는데, 이 곡은 영국 3위, 미국 45위를 기록했으나 미국에서는 방송불가판정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The Works 투어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한 보푸타츠와나 (현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속함)의 선 시티(Sun City)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선 시티에서의 불미스러운 사고로 그들은 인종차별자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인종차별문제로 난동을 일으켰으며 부득이하게 공연은 중단되었으며 또한 프레디의 목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비정치적 밴드라고 했지만 이 해에는 1984년 이듬해의 일본 투어에 앞서, 로저 테일러와 존 디콘이 관광 및 프로모션 차 잠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를 계기로 퀸의 팬클럽이 결성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1986년 퀸은 Rock In Rio에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아프리카 난민 구제를 위한 Live Aid 공연이 있었는데, 퀸은 자신에게 지정된 20분간의 훌륭하게 연주해 내며 청중과 기자단을 사로잡아 이 날 최고의 밴드가 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Live Aid의 기획자인 밥 겔도프 그리고 엘튼 존으로부터 "그들이 쇼를 훔쳤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 얻은 영감으로 영화 [아이언 이글](Iron Eagle)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곡 ‘One vision’(영국 7위)을 녹음하여 출시하였습니다.

 

 

 퀸은 다양한 시도를 한 그룹으로 하드록, 오페라록, 펑키한 음악과 뉴웨이브 등을 선보였는데 이들의 음악적 변신은 록에 대한 변절로 비쳐질 수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이 일부 평론가들에게는 정체가 모호한 팝/록 밴드로 치부되어 악평의 대상이 되었고 일부 팬들에게는 혼돈을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이러한 변화가 대중적인 히트로 계속 이어졌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기야 1980년대 시대 흐름이 상업화된 록에게 상당 부분 있었다는 것도 이들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었던 커다란 요인이기도 했지만 상업적 변화를 꾀하다가 골수팬들의 이탈을 경험한 밴드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들의 지속적인 인기 행진 역시 시대흐름과 그들의 음악적 역량 그리고 행운까지 곁들여진 결과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 그렇다고 Queen이 언제나 전폭적인 지지아래 인기를 누려온 것도 아니어서 때론 팬들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히기도 했고 그 누군가는 이들을 ‘이것저것 판매하는 슈퍼마켓악단’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퀸이 차려놓은 수퍼마켓의 물건들은 그 어떤 밴드가 차려놓은 물건 진열대보다 외형적으로는 매력적인 상품들이었다.바꿔말하면 이들이 '너무 상업적인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음악 평론가들이 이들에게 혹평할 수 있는 빌미를 마련해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이 선사한 'We Will Rock You'가 록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고전중의 하나이고 Queen이 만들어낸 'Bohemian Rhapsody'가 1970년대의 가장 뛰어난 싱글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 또한 'Bohemian Rhapsody'가  수록된 [A Night At The Opera] 역시 팬들이 기억해야할 명반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을 진정한 락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게 한다.

 

 

1986년 3월 존 디콘은 영화 ‘Beagles’를 위하여 Immotals라는 밴드를 조직하고 'No Turning Back'이라는 노래를 녹음하고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1986년 6월 2일 Queen은 영화 HighLander의 사운드트랙이면서 그들의 14번째 앨범이 되는 [A KIND OF MAGIC]을 발매하여 챠트 1위에 올랐으며 13주 동안 TOP 5 안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동명의 싱글 'A King Of Magic'는 35개국에서 챠트1위에 올랐습니다.

 

퀸은 6월 7일 'Magic Tour Of Magic'이란 이름으로 투어를 감행하였으며 영국에서는 Newcastle의 St.James Park football stadium에서 열렸고 promoter, Harvey Goldsmith는 수익금의 전액을 International Save The Children Fund(국제 아동 기금 : 옮긴이)에 기부했습니다.

 

한편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인 공연은 이틀간 매진이라는 흥행을 거두었고 둘째 날 촬영된 그들의 라이브공연은 훗날 영국전역으로 방송되었습니다. 7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이 공연은 메이저급 밴드가 벌인 첫 동구권 공연이었고 역시 매진되었습니다. 그리고 Magic 투어 마지막 날에 있었던 Hertfordshire의 Knebworth Park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12만 명이 모였고 투어 동안 영국인들은 40만 명, 유럽인들은 100만 명이 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해 11월 EMI레코드사에서는 그들의 이제껏 발매된 전 앨범들이 다시 발매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전까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12월에는 그들의 15번째 앨범이자 두 번 째 라이브 앨범인 [Live Magic]이 발매되었습니다. 공연을 보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준 이 앨범은 영국챠트에서 3위에 올랐으며 1986년 그해 1년간 퀸이 영국에서 판매한 앨범은 총 1,774,991장이었습니다. 12월 13일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Live In Budapst가 개봉하였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Don't stop me now]

 

 

1987년 2월에는 The Platters의 명곡 ‘The Great retender’를 리메이크하여 챠트 4위에 올려놓았고 3월에는 평소 프레디가 존경하던 오페라 가수 Montserrat Caballe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앨범을 내기로 약속을 하고 프레디는 Montserrat Caballe를 위하여 그녀의 고향인 Barocelona에 대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발매된 싱글 ‘Barocelona’은 스페인에서 발매된 3시간 만에 만 여장이 팔려나갔습니다. 스페인 올림픽위원회에서는 92년 올림픽 주제가를 이 곡으로 선정하였으나 훗날 프레디의 사망으로 인해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되어 취소되었습니다. 한편 로저 테일러는 퀸의 휴식기간에 같이 활동할 멤버를 모집하여 밴드 The Cross를 구상하기도 하였는데 이후 1988년 1월 25일 The Cross는 그들의 데뷔앨범 [SHOVE IT]을 발매하기도 하였습니다. 1987년 11월에는 다큐멘타리형식의 3부작 video, 'THE MAGIC YEARS'가 발매되었는데 퀸의 Magic Tour의 잘된 콘서트 실황과 그들의 무대 뒷모습, 인터뷰 등을 담은 영상이었습니다. 이 비디오는 Silver Screen award와 Montreux Golden Rose TV festival의 IMMC award에서 수상하였으며 1987년에 영국음악에 대한 뛰어난 공로로 특별 'Ivor Novello'상을 받았습니다.

 

1989년 5월 22일에 그들의 16번째앨범인 [THE MIRACLE]을 발매되었는데 본국인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챠트 1위를 차지하였고 싱글 ‘I want it all’은 영국차트 3위(미국 50위), ‘Breakthru’(영국 7위) ‘The invisible man’(영국 12위) ‘Scandal’(영국 25위)이 히트하며 그들은 스스로 1980년대를 화려하게 마무리하였으며 ‘인디펜던트 텔레비전’의 시청자 투표에 의해 ‘80년대 최고 밴드’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1990년 2월 18일에는 Phonographic Industry에서 공로가 큰 음악인에게 공로상인 BPI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91년 1월 14일에는 싱글 'INNUENDO'이 발매되었고 동시에 영국 챠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앨범이 2월 4일 발매되어 역시 영국차트 1위(미국 30위)를 차지하였고 ‘I’m going slightly mad’(22위), ‘Headlong’(14위), ‘The show must go on’(16위) 등 이어진 싱글들도 히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Greatest Hits II]가 발매되었으며 사진집과 비디오모음집도 같이 발매되었습니다.

 

그러나 앨범의 히트가 퍼져나가기 전에 갑작스런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밴드 탄생 20주년이 되던 1991년, 11월 22일 프레디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말하였고 2일 후인 11월 24일 그는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 신자인 부모의 뜻에 따라 3일 후에 조용히 화장하였습니다. 세 장의 앨범을 내던 로저 테일러의 밴드 The Cross도 활동 중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프레디의 이름으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설립된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Mercury Phoenix Trust)의 기금 마련을 위해 'Bohemian rhapsody/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이 발매되어 5주간 영국 챠트 1위에 올랐으며 이 싱글의 수록곡인 [Bohemian Rhapsody]는 음반싱글 역사상 처음으로 1차발매(1975년)와 재발매(1992년) 모두 차트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12월에는 퀸의 앨범 10장이 영국 차트 100위권에 랭크되며 프레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였습니다.

 

1992년 2월,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는 '영국 음악에 크게 공헌'한 바를 인정하는 특별상을 수여하였고,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를 '1991년 베스트 싱글'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20일에는 추모공연도 있었는데 이 공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머큐리 피닉스 트러스트(The Mercury Phoenix Trust)가 설립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브라이언, 로저, 존이 퀸의 마지막 정규앨범 [Made In Heaven]을 완성하여 전 세계적으로 발매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 인기를 확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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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보여준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상업화가

그들 스스로에게 '록'이란 장르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들 Queen이 록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에도 실력을 발휘했던 보기드물게 다재다능

한 뮤지션들의 집합체였다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 sea2138 글.

- 모터핑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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